[탈레반 ‘빈 라덴 결정’ 왜 미루나]美 공격대비 시간벌기 전략

  • 입력 2001년 9월 19일 19시 24분


아프가니스탄이 오사마 빈 라덴을 내놓으라는 미국의 최후통첩을 사실상 거부했으면서도 공식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시간을 끌고 있다.

탈레반 지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수도 카불에 특파됐던 파키스탄 대표단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18일 이슬라마바드로 귀환, 아프가니스탄이 빈 라덴을 포기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그런데도 아프가니스탄의 종교지도자와 부족장 등 원로들은 18일 카불에 모여 빈 라덴 신병 인도 문제를 논의한데 이어 19일 다시 이 문제를 논의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빈 라덴을 미국이 아닌 제3국에 인도 △국제사회의 탈레반 정권 인정 △유엔의 제재 해제 등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울 것을 주장했지만 많은 참석자가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회의에 참석한 파키타주 대표 성직자인 물라 모하마드 하산은 “나라가 폐허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확실한 증거도 없이 ‘손님’인 빈 라덴을 넘겨줄 수는 없다”며 강경론을 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18일 “아프가니스탄은 빈 라덴의 신병을 조건없이 인도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채택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아프가니스탄의 난해한 전제조건을 수용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탈레반은 왜 종교지도자 회의를 내세워 공식답변을 미루고 있을까.

탈레반이 빈 라덴을 쉽게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탈레반을 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전사들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AP통신에 따르면 현재 아프가니스탄에는 아랍과 인근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체첸 등에서 들어온 이슬람 전사가 6000∼1만여명이나 된다. 탈레반이 그동안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은 빈 라덴을 배신하고 그를 넘겨줄 경우 군사력의 주축인 이들이 곧바로 총구를 탈레반 정권의 심장부로 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탈레반 정권이 이미 빈 라덴을 넘겨주지 않기로 결정해 놓고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 시간을 벌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탈레반은 17일 미국의 공격 루트로 예상되는 파키스탄 국경 부근에 병력과 화력을 집중시키고 반(反) 탈레반 연합체인 ‘북부 동맹’을 공격하는 등 공세를 폈다. 북부 동맹의 힘을 약화시켜 이들이 미군에 협력하는 것을 봉쇄하는 등 미국과 일전을 벌이기 위한 준비에 돌입한 것이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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