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테러응징戰]아랍권 '미 확전시사' 일제히 반발

  • 입력 2001년 10월 11일 00시 01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 아프가니스탄 이외의 다른 국가로 확산될 수도 있다며 경고하고 나서자 아랍권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확전시 가장 먼저 미국의 공격 목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라크의 나지 사브리 외무장관은 10일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조직 알 카이다와 이라크는 아무 관련이 없다”면서 “이라크는 미국의 다음 공격 목표가 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고 있는 이슬람회의기구(OIC) 외무장관 회담에 참석중인 사브리 장관은 이날 알 자지라 방송과의 회견에서 “미국이 테러를 핑계삼아 이라크로 공격을 확대한다면 이는 그들이 걸프전 때 이라크에 맺힌 원한을 풀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의 ‘테러행위’는 이슬람권 전체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라크의 모하메드 알두리 유엔 주재 대사도 9일 “이라크는 이번 테러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현명하지 못한 결정을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알두리 대사의 이날 발언은 미국이 7일 존 네그로폰테 유엔 주재 대사를 통해 ‘탈레반 정권을 지원할 경우 군사공격을 단행하겠다’는 경고서한을 이라크측에 전달한데 따른 것이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이번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테러범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다른 국가들로 확대될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고 영국의 이브닝 스탠더드지가 10일 보도했다.

블레어 총리는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하기 위해 제네바에 잠시 기착했을 때 아부다비 TV와의 회견을 통해 “대테러 전쟁은 2단계로 이뤄져 있으며 탈레반에 대한 공격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그러나 명백한 증거가 없는 나라들은 공격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개최된 OIC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57개 회원국 대표들도 확전 가능성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OIC 의장인 셰이크 하마드 빈 할리파 알 타니 카타르 국왕은 회의 개막연설에서 “미국의 군사작전은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테러공격을 저지른 사람들에 국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미 성향의 아랍국가인 오만의 유스프 빈 답둘라 외무장관도 “대테러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은 지지하지만 다른 아랍국가를 공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OIC 회원국들은 확전에 대한 우려 입장만 확인했을 뿐 미국의 보복공격에 대해서는 일치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 채 회의를 마쳤다. 한 참석자는 “회원국들이 미국의 공격에 대해 공동의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고 밝혔으며 익명을 요구한 한 장관도 “의견일치를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공격을 둘러싸고 OIC 회원국들이 분열된 양상을 보임에 따라 당초 예정된 성명서 채택도 성사되지 않았다.

앞서 9일 열린 아랍연맹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22개 회원국 대표들도 미국의 보복공격에 대해서 침묵을 지켰다. 아므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미국의 공격에 대한 아랍연맹의 반응을 묻자 “공격은 미국이 군사기지로 간주하고 있는 곳에 한정돼야 하며 민간인은 보호돼야 한다”면서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다.

<정미경기자·파리〓박제균특파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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