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도 3題]정부-언론 ‘국익 對 알권리’ 신경전

  • 입력 2001년 10월 11일 18시 39분


【전쟁이 터지면 언론도 정부나 군사전략가들 못지 않게 바빠진다. 정확한 전황(전황)을 파악하기 위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전선에 뛰어들기도 하고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쟁관련 정보를 놓고 정부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언론 보도가 필연적으로 자국의 전쟁전략을 노출시킨다는 점을 감안해 국익을 해치는 정보에 대해서는 보도에 신중을 기하기도 한다.

미국의 이번 테러 응징 전쟁에서도 정부와 언론간의 관계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戰況 공개하라” 국방부에 요구▼

의회에 대해서도 전쟁관련 브리핑 대상을 일부 지도자들로 제한하는 등 미 정부가 이번 전쟁에 대한 정보를 지나치게 통제하자 미 언론이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9일 오전 아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 자리에서 출입기자들은 “어떤 이유에서 의회 브리핑조차 제한하느냐”고 집중 추궁했다. 미국의 주요 신문과 방송은 국방부에 대해 아프가니스탄 공습의 성과를 입증하는 증거 공개를 요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ABC방송의 폴 프리드먼 부사장은 10일 “지난 사흘간 미국 국민들은 실제 아프가니스탄 군사작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어떤 전과를 올렸는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며 언론은 수일 내에 국방부에 대해 전과 증거를 공개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지의 필립 베넷 국제뉴스담당 부국장은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의 피해 상황을 직접 볼 수도 없으며 미국의 군사작전 목표나 정책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 지를 알 길이 없다”며 “현재 보도 상황은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테러 사태 직후 미 연방항공청(FAA)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전국적으로 헬리콥터 이착륙을 금지시킨 상태여서 뉴스보도에 헬리콥터를 자주 이용하는 미 방송사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의 방송들은 최근 이런 규제조치가 일부 완화돼 경비행기나 행글라이더, 심지어는 열기구도 자유롭게 이착륙하고 있는 데도 헬기에 대해서는 아직 규제가 풀리지 않아 뉴스 보도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빈라덴 메시지 생방송 않겠다”▼

미국의 주요 TV 방송사들은 10일 백악관과 협의 후 테러 배후 용의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메시지를 생방송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ABC CBS NBC 폭스 CNN 등 미국의 주요 방송사들은 이날 각각 발표한 성명에서 “빈 라덴이나 그가 이끄는 단체 알 카이다 추종자들의 성명을 그대로 방송할 것인지 결정하기에 앞서 이를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조치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이 각 방송사에 ‘빈 라덴이 메시지에서 자신들만의 암호를 통해 전쟁 전략이나 추가 테러를 지시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 뒤 취해졌다.

이전에는 방송사들이 비디오테이프를 그대로 방송했었다.

CNN 등은 7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 직후 빈 라덴이 카타르의 위성방송 알 자지라를 통해 내보낸 녹화 테이프 연설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방송했으며 폭스뉴스와 CNN은 9일에도 미국의 공습을 강력히 비난하는 알 카이다 대변인의 발표를 여과없이 방송한 것이 그런 사례.

알 자지라 방송의 뉴스를 제한적인 독점권을 갖고 방송해온 CNN은 “직접적으로 테러 행위를 조장할 수 있는 어떠한 내용도 방송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방송사들은 연설을 통한 암호 메시지 전달은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애국심의 발로에서 이같이 합의했다”면서 “이처럼 방송사들이 공동으로 특정 뉴스에 대한 보도를 자제하기로 합의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알자지라 “美정부 압력 거부”▼

탈레반과 빈 라덴 단독 취재로 연일 특종을 건져 올리고 있는 알 자지라 방송은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빈 라덴과 알 카이다에 대한 종전의 보도 방식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알 자지라 방송이 미국 주도의 테러전쟁 보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방송시간을 과도하게 할애하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파월 장관은 “특히 빈 라덴의 메시지는 미국인 살해를 조장하는 선전이 될 수 있으며 추종자들에게 추가적인 테러 공격을 명령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알 자지라는 대미(對美) 항전을 촉구하는 빈 라덴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단독 입수해 보도했으며 탈레반이 국내 취재를 허용하고 있는 유일한 외국 방송이다.

빈 라덴은 아랍권 전역에 방송된 자신의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이슬람 세계의 단결을 촉구하는 등 알 자지라 방송을 새로운 ‘전쟁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에서는 알 자지라 방송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인터뷰에서는 혹독한 질문을 퍼부으면서도 빈 라덴의 메시지는 여과없이 방송하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알 자지라측은 “지금까지 우리는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접근을 해왔다”며 알 자지라의 보도가 무책임하다는 파월 장관의 비난을 반박했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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