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라크인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1일 “아프가니스탄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해 확전 의지를 시사했다.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이 와해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미국 내에선 다음 단계로 이라크 등을 상대로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 벌여야 한다는 확전론이 차츰 힘을 얻는 분위기이다.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 등 강경파들은 ‘9·11 테러’와 같은 국제 테러를 근절하기 위해선 테러리즘을 비호하는 국가들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라크는 이란 리비아 시리아 수단 쿠바 북한 등과 함께 미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라 있다. 국무부가 4월에 발표한 2000년 국제테러보고서는 아랍해방전선(ALF) 팔레스타인해방전선(PLF) 등 여러 개의 테러조직이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활동 중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8일 이라크가 바그다드 남부의 비밀 캠프 ‘살만 팍’에서 중동 각지에서 모인 테러범들을 5, 6개월씩 훈련시켜온 사실을 95년부터 이에 관여했던 전 이라크 정보부 책임자 등의 증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라크가 오랫동안 생화학 무기를 개발해 온 것은 특히 미국이 우려하는 대목. 지난달 초 우편물에 의한 탄저균 공격이 시작되자 미국이 증거도 없이 이라크를 배후로 의심했던 것은 이라크가 그만한 능력을 갖춘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었다. 이라크는 최근 3년간 유엔 무기사찰단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라크는 93년 쿠웨이트에서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암살 테러를 추진하다 실패한 바 있다.
◆가능성 있을까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 조직 알 카에다가 전 세계 60여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몇 년에 걸쳐서라도 뿌리뽑겠다는 결의를 거듭 천명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 전문가 윌리엄 테일러는 최근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에서의 군사작전이 종료되면 미국은 이라크 공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앞으로 2주 이내에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9·11 테러와 직접 관련성을 드러내 보이지 않은 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아프간 공습에서 미국과 보조를 같이하고 있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도 이라크에 대한 확전에는 반대하고 있다. 또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5일 “이라크가 9·11 테러에 개입한 증거가 없는데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다면 실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미 국무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국제연대가 무너질 것을 우려해 이라크에 대한 공격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아직 공식적으로는 이라크 공격 예정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빈 라덴이 체포 또는 사살될 경우 서둘러 확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美 “9·11테러 관련없어도 공격 가능”▼
이라크를 겨냥한 미국 행정부의 발언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라크는 ‘9·11 테러’ 초기 배후로 주목받았다가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미국의 공격 가능성에 대한 발언이 최근 부쩍 잦아졌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1일 켄터키주 포트 캠벨에 있는 군부대를 방문, 1만여명의 장병들에게 연설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시작’에 불과하며 (아프가니스탄 외에도) 안심할 수 없는 그런 국가들이 있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 고위관리들은 더 직접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은 18일 NBC방송에 출연, “9·11테러가 아니더라도 사담 후세인(이라크 대통령)이 매우 위험한 사람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은 같은 날 “테러 지원국이 상당수 존재하며 사담 후세인은 그중 한 명”이라고 직접 겨냥했다.
미 일간지 USA투데이는 19일 “울포위츠 부장관이 이끄는 강경론자들은 ‘이라크 공격에 앞서 이라크가 9·11테러와 연루됐거나 지원했다는 사실이 꼭 입증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테러와 관련된 증거가 드러날 경우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던 지난달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라크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부총리는 최근 영국 선데이 텔레그래프지와의 회견에서 “미국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그것은 매우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종대기자>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