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聖地=매년 크리스마스철만 되면 전세계 관광객과 성지 순례자들이 몰려들어 축제 분위기였던베들레헴이 올해는 ‘유령의 마을’을 방불케 하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베들레헴의 거리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택시운전사들과 성탄절 기념품 가게를 찾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그러나 올해는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거리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다. 방문객들을 맞는 것은 ‘크리스마스 2000’이라고 적힌 색 바랜 지난해의 포스터와 글자가 중간중간에 떨어져 나간 ‘이빨 빠진’ 네온사인뿐이라고 워싱턴포스트지는 23일 전했다. 시내 호텔은 텅텅 비었으며 거리에는 성지 순례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베들레헴이 크리스마스의 축복에서 멀어진 것은 10월 이스라엘군이 이곳을 열흘 넘게 점령한 뒤부터.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한때는 마을로 밀려드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맞기 위해 서로 힘을 합쳤지만 이제는 추억이 됐다.
1995년 베들레헴이 팔레스타인 자치령이 된 뒤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야세르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이 이곳을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오지 못한다. 이스라엘군에 의해 가택연금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의 성탄은 그래서 더 썰렁하다.
<김성규기자>kimsk@donga.com
◆차분한 뉴욕=“크리스마스 이브엔 가족들과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다음날엔 친척들과 모여 선물을 교환할 겁니다.”
논문준비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 만큼은 고향 텍사스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낼 예정이라는 대니얼 왕(27·미 스탠퍼드대 대학원 박사과정)씨.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끼리끼리 여행을 가곤 하던 친구들이 올해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언론들은 9·11테러이후 부쩍 높아진 가족과 종교에 대한 관심을 언급하며 영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연말 쇼핑열기를 압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종교서점에서는 75명의 작가와 시인들이 ‘위기와 회상, 치유의 시간에서’라는 주제로 모임을 갖고 관련 작품을 낭독하는 등 영적 각성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24일 AFP통신이 전했다.
오갈 데 없었던 노숙자가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 매년 불우한 이웃을 돕는 ‘비밀 산타’가 됐다는 이야기도 올 성탄절의 화두.
20여년간 남몰래 이 ‘비밀 산타’가 나눠준 돈만 수백만달러. 19일에는 뉴욕 맨해튼을 3일간 돌며 빈민자들에게 약 2만5000달러(3000만원)를 나눠줬다.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죠. 나누면 기쁨을 배로 되돌려 받습니다.”
예년보다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2001년 성탄절을 맞는 미국의 모습이다.
<김정안기자>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