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레메스 레니코프 경제장관은 상·하원에서 비상경제개혁법안이 통과된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7일부터 상품과 서비스, 자본거래는 새로운 환율에 따라 이뤄진다”며 “초기 혼란을 피하기 위해 7, 8일 이틀간 은행이 휴무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조치가 발표되자마자 인플레를 우려한 시민들이 한꺼번에 사재기에 나서는 바람에 큰 혼란이 벌어졌다.
▽비상경제대책 주요 내용〓비상경제대책의 뼈대는 달러와의 환율을 29%로 평가절하하는 것을 비롯해 △태환정책의 폐지 △재정적자 제로를 목표로 한 긴축 예산 △정부와 민간 차원을 포함한 외채상환의 한시적 중단 △금융시스템 개혁 등이다.
외국기업의 로열티나 다국적 기업의 수익금에 대한 해외송금도 제한된다. 아르헨 정부는 이를 통해 100억달러 가량의 외화유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르헨 정부는 이 같은 개혁조치를 발판으로 국제통화기금(IMF) 등과 협상에 나서 150억∼200억달러의 추가 지원을 받아내 외환위기를 탈출한다는 계획이다.
▽일요일 대혼란〓정부가 페소화 평가절하를 발표하자 일요일 오후인데도 시민들이 몰려나와 사재기를 하느라 상점마다 북새통을 이뤘다.
특히 창고형 슈퍼마켓에는 TV 냉장고 컴퓨터 등 가전제품과 치약 비누 샴푸 등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생필품을 미리 사두려는 시민들이 밤 늦게까지 줄을 이었다. 제과점 등 일부 상인들은 6일부터 물품가격을 20∼30%씩 올려받기도 했다.
사서인 파울라 카르도소(57)는 “10년 전 연 5000%의 살인적인 물가상승률을 아르헨티나 국민은 생생히 기억한다”며 “D데이가 오기 전에 물건을 사러 나왔다”고 말했다.
▽전망 및 과제〓비상경제대책의 성공 여부는 페소화 평가절하에 따라 구매력이 격감한 국민이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느냐와 미온적인 IMF와 미국 등이 추가로 자금지원을 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
아르헨 정부는 인플레를 막기 위해 기초 생필품의 가격을 통제키로 했지만 벌써부터 물가가 들먹거리고 있다. 90년대 초와 같은 살인적인 인플레가 재연될 경우 시민폭동과 약탈 등이 우려된다.
평가절하로 큰 손실을 입게 될 다국적 기업의 태도도 주목된다. 위기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을 경우 이들 기업과 국제자본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