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전용기로 사용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구입한 보잉 767기에서 첨단도청장치가 발견된 사건에 대해 세계 유수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양국 정부 모두 이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는 기류가 읽혀진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언제 이를 인지했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파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장 주석은 지난해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상하이(上海)로 갈 때 이 전용기를 이용할 예정이었으나 도청장치가 발견됨에 따라 다른 항공기를 이용했다. 이 때부터 미국이 이 사건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지난 6개월간 이 전용기에 도청장치가 설치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떠돌아다녔다. 이 전용기를 제작한 보잉사의 엘리자베스 버디어 대변인은 19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회견에서 “그동안 이 소문의 진원지와 진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해왔다”고 밝혔다.
민간항공사가 이 같은 정보를 수집하고 있을 무렵 미 정보기관은 이미 사건의 개요를 파악했을 개연성은 높아진다. 양국이 이미 이번 사건이 보도되기 전에 이 사건의 처리 향방에 대해 모종의 합의를 했을 가능성조차 제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해 4월 남중국해에서 정보수집 임무를 수행하던 미 해군 EP3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사건 이후 개선돼온 미중 양국관계에 큰 악재로 작용할 소지는 적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베이츠 길 연구원은 “이번 일은 전용기 운항 전에 도청장치가 적발된, 일종의 실패한 첩보작전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20일 폭스TV와의 회견에서 “이번 사건이 다음달 21일로 예정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방중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초청을 받았고 그들 역시 우리처럼 정상회담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국민의 대미 감정은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의 한 관리의 말을 인용해 “중국 국민은 미국이 중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상정하고 항상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내 관측통들은 군부 등 일부 강경세력들이 중국 정부의 대미 유연정책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번 사건을 언론에 흘렸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베이징〓이종환특파원 ljhzi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