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보기관들이 그동안 상상을 불허하는 첩보작전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러시아 모스크바 하수관 속의 전화선이나 독일 베를린 장벽 밑으로 지나가는 전화선을 도청했는가 하면 유라시아 대륙을 달리는 구소련의 화물열차 짐칸에 핵탄두 탐지장치를 실어 핵활동을 감시했다.
77년 6월20일에는 청와대의 집무실을 도청해 로비스트 박동선(朴東宣)씨가 미 의원들을 매수한 정보를 알아냈다는 내용이 뉴욕타임스에 보도되는 바람에 외교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가공할 첩보능력〓사실 미국의 정보력을 놓고 보자면 이처럼 내정간섭을 무릅쓰고 무리한 작전을 벌일 필요가 없어 보인다. 최근 발생한 두 사건이 단적인 예다.
4일 이스라엘은 에일라트항에서 480㎞ 떨어진 홍해 해상에서 무기 50t을 싣고 팔레스타인으로 가던 화물선을 적발했다.
그러나 이란에서 출발한 이 화물선이 페르시아만을 거쳐 홍해로 진입해 홍해 북단까지 오는 동안 추적해온 것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미 정보기관이었다고 CNN방송은 보도했다.
▼美 “北 공작선 추정” 제보▼
지난해 12월22일 동중국해의 중국측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일본 해상보안청이 적발한, 북한 공작선으로 추정되는 괴선박도 미국의 제보가 결정적이었다. 미 정찰위성은 괴선박이 18일 해주를 출발해 남포항에서 가까운 군항인 송림을 들른 뒤 중국 영해를 향해 출항한 것을 확인하고 일본 방위청에 통보했다.
▽통신감청과 영상감시〓미국의 정보망은 크게 국가안보국(NSA)을 중심으로 한 통신감청과 국가정찰국(NRO)을 중심으로 한 영상감시로 이뤄진다. 군사 정찰업무는 고공 정찰기 U2기와 EP-3E기 등이 맡고 있다.
NSA가 주도하고 있는 세계적인 통신감청망 ‘에셜론(ECHELON)’은 120개가 넘는 위성을 기반으로 한 도청 및 감청 시스템으로 운영비만 한 해 150억∼200억달러(약 26조원)에 이른다.
정확한 음성 인식기능을 가진 에셜론의 슈퍼 컴퓨터는 국제전화 팩스 전자우편 무선통신을 시간당 수십억개씩 감청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61년에 설립된 NRO는 92년에야 그런 조직이 있다는 사실이 비밀에서 해제됐을 정도로 베일에 가려진 조직. 적외선과 열, 레이더를 통해 이미지와 움직임을 포착하고 라디오와 극초단파를 통해 음성을 식별하며 원거리에 있는 목표물의 화학적 성분까지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서 수집된 정보는 1급비밀(Top Seceret)보다 한 단계 위인 특수정보(SCI)로 분류돼 극비리에 처리된다. 한 해 예산은 60억달러(약 7조8000억원)로 추정된다.
▽끊임없는 도청 시도〓그러나 뛰어난 첩보력도 정보를 은폐하거나 역정보를 흘리는 방첩망을 항상 뚫기는 어렵다.
▼정상 육성이 최고의 정보▼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99년 인도의 핵실험이다. 인도는 미 첩보위성들이 감시하지 못하는 공백기간을 이용해 핵실험을 준비함으로써 감쪽같이 미 정보기관을 따돌렸다.
때문에 정보기관이 가장 선호하는 정보는 상대국 핵심요인에 대한 근접 정보다. 가공되지 않은 상대국 정상의 육성이야말로 상대국 최고급 정보의 총합이다. 상대국 정상에 대한 도청설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