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한미 통상현안 회의’ 에서 미 무역대표부(USTR) 바바라 와이젤 아태담당 부대표보 등 미국측 대표들은 자동차 의약품 농산물 등에 대한 한국의 수입장벽을 더 낮춰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는 20∼22일 방한한 존 헌츠먼 USTR 부대표가 재정경제부 농림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 장관들을 차례로 만나 수입 확대와 추가 개방을 요구한 데 이은 것이어서 미국측의 의도가 주목된다.
USTR 대표들은 현재 평균 8%인 수입 자동차 관세를 미국 수준인 2.5% 정도로 더 낮추고 충돌시험 등 일부 유럽식으로 되어 있는 자동차 표준·인증 제도도 개정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1995∼98년 한미 자동차협상 이후에도 한국 정부가 수입차를 늘리기 위한 소비자인식 전환이나 중형차에 대한 중과세 폐지 등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정부는 유럽연합(EU)의 자동차 관세가 10%인 것을 들어 한국의 관세가 높지 않으며 관세 인하는 올해부터 본격 시작되는 도하라운드 등 다자협상에서 논의될 문제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소비자인식을 바꾸기 위해 조만간 경찰 패트롤카 50대를 수입차로 구입하는 등 ‘성의’ 를 표시할 예정이다.
미국은 또한 한국이 보험 재정 건전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의약품 참조가격제’ 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참조가격제는 품목별 평균 약값을 정해 이보다 지나치게 비싼 약에 대해서는 보험에 반영하지 않고 환자의 부담을 늘리는 제도. 지난해부터 보건복지부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나 철회될 가능성이 많아졌다.
또한 유전자변형 여부를 생산 유통 단계별로 각각 표시하게 되어 있는 유전자변형작물(GMO)표시제도를 완화하고, 기능성 화장품 인증제도와 방문판매법이 수입품에 불리하므로 완화해달라는 것이 미국측 주장. 기간 통신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 49%를 없애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라는 등의 요구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사실상 대부분의 수입 장벽을 없앴음에도 미국이 압력 수위를 높이는 것은 자동차 철강 등 미국 산업 전반에 걸친 과잉생산과 경기침체의 화살을 해외로 돌리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상균 외교부 북미구주통상담당 심의관은 “미국은 올해도 정치 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 경제난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 이라면서 “대미 수출은 줄어들고 통상압력은 강화되는 한 해가 될 것” 으로 내다봤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