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건 전 회장 구속, 파장과 의미

  • 입력 2002년 1월 25일 16시 38분


파산한 간사이흥은(關西興銀)의 옛 경영진에 대한 수사는 예정됐던 것이다. 일본 경찰이 파산한 한국계 신용조합 도쿄상은(東京商銀)과 총련계 신용조합 조긴긴키(朝銀近畿), 조긴도쿄(朝銀東京)에 대해서도 수사에 착수해 이미 옛 경영진들을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희건(李熙健) 전 회장이 한일간 재계 파이프라인 인데다 재일동포의 대부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융자 책임자가 이 전회장의 아들인 이승재(李勝載)전 부회장이여서 이 전회장까지 구속하는 것을 망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전회장이 결재권은 없지만 업무 전체를 통괄하고 있었고 융자를 받은 코마개발의 회장도 겸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부자(父子)를 함께 구속하는 강수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간사이흥은은 1955년 재일한국인을 위한 금융기관을 표방하면서 신용조합 오사카 흥은 으로 출범했다. 이후 성장을 거듭해 87년에는 30개가 넘는 한국계 신용조합 가운데 전국 1위의 예금고를 기록했다. 93년에는 고베(神戶) 시가(滋賀) 와카야마(和歌山) 나라(奈良)신용조합을 합병, 간사이 흥은 으로 재출발했다. 2000년 3월 현재 조합원 9만5000여명에 총예금 1조914억엔, 대출금 9674억엔으로 지방은행 중위급의 규모였다. 그러나 거품 경기가 한창일 때 부동산과 서비스업종에 거액대출을 해주고 회수하지 못해 결국 2000년 12월 파산하고 말았다.

일본 경찰의 수사초점은 이런 거대 신용조합의 파산원인을 규명하는 데 모아지고 있다. 일단 무담보 융자에 따른 배임혐의로 구속했지만 횡령 등의 혐의가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본 정부가 파산한 신용조합을 수사하는 것은 공적자금 투입을 앞둔 명분축적용이다. 한국계와 총련계 신용조합을 정리하는데만 각각 1조엔의 공적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변제의 의무가 없는 공적자금을 부실경영 신용조합에 대규모로 투입하는데 대한 비판이 일본 정부내에서 없지 않다. 경찰의 수사는 이같은 반발을 경영진 엄벌로 무마하려는 것.

재일민단은 한국정부의 지원으로 드래곤은행(가칭)을 만들어 간사이흥은 등 파산한 4개 신용조합을 인수해 전국은행을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재일동포간의 분열로 이 시도는 무산됐고 간사이흥은은 결국 MK택시의 유봉식(兪奉植)씨가 대표로 있는 긴키(近畿)산업으로 넘어갔다.

일본 경찰이 재일동포기업의 젖줄 역할을 해왔던 신용조합에 본격적인 메스를 가함으로써 재일동포사회는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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