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라운드’ 한국의 전략]다자협상 빨리 타결되는게 유리

  • 입력 2002년 2월 8일 17시 52분


왼쪽부터 정의용 주제네바 대사,박양천 주벨기에 및 유럽연합대사,김삼훈 주 캐나다 대사, 최혁 주 태국대사
왼쪽부터 정의용 주제네바 대사,박양천 주벨기에 및 유럽연합대사,김삼훈 주 캐나다 대사, 최혁 주 태국대사
《21세기 세계교역 질서를 바꿔 놓을 도하개발 어젠다(DDA) 협상이 궤도에 올랐다. 세계무역기구(WTO) 144개 회원국들은 지난달 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분야별 협상을 진행할 무역협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우루과이 라운드(UR) 이후 첫 다자간 협상인 도하개발 어젠다는 한국경제에 기회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공관장회의 참석차 귀국한 통상전문 대사들의 좌담을 통해 협상 전망과 한국의 대응방안을 짚어본다.》

21세기 세계교역 질서를 바꿔 놓을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궤도에 올랐다. 세계무역기구(WTO) 144개 회원국들은 지난달 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분야별 협상을 진행할 무역협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첫 다자간 협상인 도하개발 어젠다는 한국경제에 기회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공관장회의 참석차 귀국한 통상전문 대사들의 좌담을 통해 협상 전망과 한국의 대응방안을 짚어본다.

▽박양천 대사〓2005년 1월1일 이전으로 협상 시한이 정해졌으나 기한 내에 끝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계 경기 침체에 대한 위기감으로 협상 출범에는 합의했으나 다양한 이해관계가 정리되지 않아 3년의 협상기간이 지켜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정의용 대사〓하지만 7년 이상 끌었던 우루과이라운드만큼 지연되진 않을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국내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반덤핑규정 개정 등 불리한 협상의 시작을 받아들였다. 그만큼 선진국들의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다.

▽김삼훈 대사〓협상을 좌우할 변수의 하나가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범미주자유무역협정(FTAA)이다. 미국은 2005년을 목표로 미주 34개국을 묶는 지역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공식적으로는 다자협상을 우선한다고 말하지만 자국에 불리해지면 언제든 지역협정으로 돌아설 것이다. UR 때도 사실상 1992년 말 협상이 거의 완료됐으나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우선하는 바람에 1994년에야 타결됐다. 아직 지역협정이 하나도 없는 한국은 다자협상이 빨리 타결되는 것이 유리하다.

▽최혁 대사〓WTO의 정신은 시장개방과 교역 자유화다. 그러나 농수산물 등 한국이 개방해서는 취약한 분야의 경우 내부 구조조정에 필요한 시간과 보조금 허용 등 필요한 정책수단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환경보호 등 농업의 비교역적 특성을 최대한 주장해야 한다. 협상타결까지 3년, 그 이후 점진적인 개방 5년을 포함하면 아직 8년의 시간은 있다. 농업에 대한 100년의 장기 비전을 갖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수산물 분야도 도하라운드에서는 무역질서를 왜곡하는 보조금은 없앤다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한국은 기존 보조금을 환경친화적 보조금이나 교역과 무관한 보조금으로 전환해 협상에 대비해야 한다.

▽김 대사〓한국은 국제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경제력이 세계 10∼12위다. 이런만큼 개발도상국이라면서 다른 나라를 설득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 대사〓협상도 해보지 않고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느냐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 한국의 교역량은 세계 전체의 2.7%를 차지한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을 다 합해도 2.3%다. 개도국 지위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농업직불제나 쿼터 등 우리가 쓸 수 있는 협상 카드의 국제적 적법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협상에서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 분야에서는 선진국 입장에 서면서 취약한 분야만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면 국제사회에서 이미지만 나빠지고 실익을 못 얻을 수 있다.

▽최 대사〓한국은 다른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농산물과 환경 문제는 선진국이 부담하는 의무를 똑같이 감당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품목별 허용 보조금을 선진국(5%)과 개도국(10%)의 중간인 8%로 인정받은 것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정 대사〓한국은 이번 협상에서 매우 공세적이다. 국민은 아직도 ‘개방’ 하면 피해의식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한국은 공산품에 대한 선진국들의 고(高)관세나 반(反)덤핑규정을 최대한 낮추려 하고 있으며 해운 건설 등 서비스분야에서도 개도국들의 교역장벽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해외에 수출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부대비용을 줄여나갈 것이다.

▽김 대사〓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다. 다자협상이 진행된다는 것 자체가 한국경제에 이미 득이다. 다자협상이 없으면 양자협상으로 가야 하는데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양자협상에서 불리하다.

▽박 대사〓다자협상을 하다 보면 이익을 얻는 집단과 피해를 보는 집단이 생긴다. 피해를 보는 사람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고 직업 전환을 도와주는 것은 국내 정치의 문제다. 농업문제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

▽정 대사〓협상 참여자의 가장 큰 임무는 물론 한국의 입장을 많이 반영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임무는 협상 결과를 빨리 예측해 국내에서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듣기 싫은 소리라도 과감하게 전달해 충분히 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도 비판이 두려워 할 얘기를 못하면 결국 잘못된 길, 손해보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최 대사〓협상과정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알려 비정부기구(NGO)나 각 이해단체, 국민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고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뤄가자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부총리 주관의 민관합동 포럼이나 NGO 학계 업계 등으로 협상대책반이 구성돼 있다.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협상 관련 보고서들을 계속 띄운다.

▽박 대사〓정부는 국민이나 NGO의 의견에 귀기울이고 있다. 지금 같은 협조체제가 이뤄지면 정부와 국민의 인식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대(對)국민 홍보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최 대사〓협상을 위한 최고기관인 대외경제장관회의부터 실무조정회의, 각 부처 대책반, 외교부 통상교섭본부 중심의 협상반 등이 단계별로 갖춰져 있다.

▽정 대사〓한국은 1998년 뉴라운드 대책반을 만들었다. 제네바에도 6개 분야별로 12명의 협상팀이 구성돼 있다.

▽최 대사〓기업에는 뉴라운드가 도전이자 기회다. 기회는 최대한 활용하고 도전에는 잘 대응해야 한다. 특히 서비스산업은 지식기반경제의 근간이고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이기도 하다. 이 기회에 개방할 것은 개방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김 대사〓이번 라운드를 통해 한국은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국민은 세계의 큰 흐름을 이해하고 환경변화에 잘 적응해야 할 것이다.

▽정 대사〓따지고 보면 한국보다 잘사는 나라도 별로 없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호주, 그밖에 캐나다 미국 서유럽의 몇 나라 정도다. 국민은 한국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온전한 선진국이 되려면 넘어야 할 문턱이 있다. 남의 것을 수용할 수 있는 국민의식이다.

소비자가 가장 유리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안돼 있다. 소비자단체들도 수입 억제를 주장하는 것을 많이 봤다. 그건 소비자단체가 아니라 생산자단체가 할 일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지 않으면 선진국에 진입할 수 없다.

정리〓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참석자:

정의용(鄭義溶) 주제네바 대사

김삼훈(金三勳) 주캐나다 대사

박양천(朴楊千) 주벨기에 유럽연합(EU)대사

최혁(崔革) 주태국 대사

사회:고승철(高承徹) 동아일보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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