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 날개없는 추락<6>]1달러 150엔땐 ‘수출 직격탄’

  • 입력 2002년 3월 3일 18시 15분


일본이 겪고있는 경제불안이 실제 금융위기로 번진다면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크지 않고 위기가 밀려오는 것도 중장기적이면서 우회적인 모습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금융부문 타격 작을 듯〓일본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위기가 중소금융기관에서 대형금융기관으로 확산될 경우 가장 우선적으로 타격이 예상되는 부분은 한국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금 회수. 97년 중반 한국 금융기관들은 일본 은행들의 무차별적인 자금 회수가 전 세계적인 자금 회수로 확산되는 바람에 결국 외환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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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최근 집계한 국내 금융기관들의 대일(對日) 차입금 규모는 70억달러. 주로 단기융통자금과 수출입금융 등이다. 이상헌(李相憲) 한은 국제국장은 “일본이 갑작스럽게 회수할 수 있는 자금규모는 이중 20억달러”라며 “4년 동안 우리 금융기관들의 체질이 대폭 강화돼 이 정도는 충격 없이 처리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기업들이 수출입거래 과정에서 빌린 무역신용 등도 문제가 생긴다면 수출품을 팔아 갚을 수 있어 한국 금융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한국의 금융산업이 일본과의 차별화를 착실히 꾀해 나갈 경우 장기적으로 호재가 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분석도 나온다. 금융부문의 부실 청소와 재무구조 개선 면에서 한국 경제가 국제투자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준 만큼 대기업 구조조정과 산업구조의 고도화만 따라준다면 장기적으로 국가신인도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것.

▽엔저에 따른 수출악화가 걱정〓그러나 일본의 경제위기는 엔화 가치하락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수출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연구기관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엔화가치가 10% 떨어질 경우(엔화 환율이 10% 절상)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4년에 걸쳐 연 0.2∼0.8% 정도씩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수출경쟁력을 약화시켜 국내 산업활동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달러당 130엔대 중반을 오가는 엔화 환율이 조만간 140엔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일본의 경제불안이 ‘악성 위기’로 치닫지는 않는다는 가정에 따른 것으로 실제 위기 국면에는 150엔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

엔화 가치하락에 따른 수출경쟁력 약화를 우려해 원화 역시 동반 하락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유입 등으로 엔화의 하락폭만큼 떨어지지 않아 원화의 엔화대비 가치는 올라가고 있다.

한국의 5대 수출품인 반도체 철강 자동차 유화 조선 등이 모두 일본의 주요수출품들과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원화 절상은 수출경기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무역협회 신승관 박사는 “수출액 비중은 낮지만 농수산물의 일본 수출도 거의 막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금융연구원 차백인 국제금융 팀장 등은 엔화 하락을 용인하는 미 행정부의 경제브레인들이 ‘대기업 출신’이란 점을 들어 엔화 하락의 바닥권이 조만간 다가올 것으로 내다본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정해왕 금융연구원장의 제언…日本 정책실기가 위기 불러▼

일본경제의 실패에서 정책당국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할 수 있다. 첫째, 대책의 시의적절성이다.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도 일본 정책당국은 대형 금융기관들이 파산에 직면한 97년 가을 무렵에야 비로소 공적자금 투입을 포함한 포괄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이미 금융시스템에 대한 위기감이 시장 전반에 확산되던 시점이었다. 부실채권이 금융기관의 자기자본을 잠식시켜 신용경색을 초래하고 경제성장을 위축시킨다는 점을 뒤늦게 깨닫기는 했지만 과감히 정책집행으로 이어가진 못했다.

둘째, 경기부양이 단기대책 위주로 실시된 점도 장기불황을 탈피하지 못하는 원인이 됐다. 경기악화가 순환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인식된 탓에 구조적인 대응은 미뤄져 왔다. 일본 중앙은행은 디플레와 경기침체라는 악순환 고리를 제거한다는 논리로 초저금리 정책을 고수해왔다. 신용경색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초저금리를 통한 유동성 공급에만 의존하는 경기부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금융시스템에 숨어있는 위험이 드러난 상황에서는 구조조정 등을 통해 위험이 경제전반에 파급되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 비판논리의 핵심이다.

장기 비전을 갖고 적기에 대응하는 정책,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일본의 실패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다. 지금은 한국 경제상황이 일본보다 나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일본경제와 유사한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일본 경기침체의 동인이 되었던 부동산 부문의 버블 붕괴는 향후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현재 아파트가격의 급등에 이어 토지가격까지 들먹거리고 있다. 일본경제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와 유사점을 찾아내고 이에 대한 타개책을 마련하는 정책당국의 노력이 요구된다.

또 앞으로 한국도 저성장 체제로 돌입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공급측면에서의 경제성장 제약요인을 파악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산업정책을 수립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 진행중인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의 엄정한 마무리를 통해 경제체질을 강화해 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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