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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교수〓저서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을 다양한 학파의 관점으로 설명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떤 학파의 입장에 가까운가.
▽월터 러셀 미드 연구원〓어느 한 관점만 일방적으로 선호하면 국가가 약해질 위험이 있어 다양성이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제퍼슨 학파의 관점을 선호한다. 목표를 달성하는 데 가장 부작용이 적은 방식이다.
▽이〓미국인은 일반적으로 어떤 학파에 가깝나.
▽미드〓미국적 세계관은 해밀턴 학파에서 깊이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유럽에서 독일이 가장 부강하지만 대륙을 압도하지는 않는 상황을 선호한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국이 독일과 같은 제한된 강국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중국이 견제받지 않는 역내 강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특정 국가의 힘이 세져 기존 강국을 위협하고 점차 이들간의 격차가 줄어들 경우에는 긴장이 생길 수도 있다는 국제정치 이론이 있다. 중국으로 힘이 전이되고 있다고 보는가.
▽미드〓앞으로 미중의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최대 인구 외에도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적 최강자로 발전하지 않도록 설득해야 한다. 중국과 버금가는 인구와 핵무기를 갖고 있는 인도의 경제성장을 도와 양자가 ‘힘의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방안도 도모해야 한다.
▽이〓제퍼슨 학파의 관점을 선호한다고 했는데 이를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미드〓미국은 아시아 문제에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 유럽이 유럽공동체를 만들도록 미국이 지원하고 공동체가 출범한 뒤에는 유럽연합(EU)의 독자적 결정권을 존중하는 모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최소한의 개입이 가장 긍정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부시 행정부는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이 완전히 뿌리뽑힐 때까지 만족을 못할 것 같다. 현재로서 첫 단계는 끝난 것 같은데 성공적이라고 보는가. 2단계 목표는 뭔가.
▽미드〓부분적 성공이다. 성과가 있다면 알 카에다가 더 이상 테러리스트 양성용 훈련소로 아프가니스탄을 이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대 테러전의 군사적 측면만 부각됐으나 실제 목적은 훨씬 광범위하다. 정보공유와 테러세력의 자금줄 차단을 위한 자금세탁방지를 위해 국제적 협력은 핵심적 역할을 한다. 너무 군사적 측면이 부각되다보니 동맹국의 기여는 묻히고 미국만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2단계 목표로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지목되고 있다. 그가 9·11테러에 확실한 연계가 있는지는 모르나 문제는 그가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 등을 개발하면서 국제법을 어기고 있고, 무기를 사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그가 위험으로 등장하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후세인 대통령이 위험인물인 것은 확실하지만 중동과 EU의 반응은 냉담한 것 같다. 국제적 협조와 지지를 얻기 위해 미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미드〓부시 정부는 이라크 문제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을 얻고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엔의 승인이 있는 군사행동은 국제적 협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를 위해 자신의 정책을 효율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왜 미국과 동맹국간 인식의 차가 발생했는가. 미국의 행동이 평화를 위해 필수적이고, 자신들은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져야 할 짐을 오히려 혼자 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미드〓미국 국내와 세계의 인식 차가 있다. 미국인은 전시 상태라고 보지만 테러를 당하지 않은 다른 나라에서는 여전히 평화로운 상태라고 본다.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한 설득노력이 중요하다. 최근 ‘악의 축’ 발언 이후 부시 행정부는 어떻게 하면 세계와 의사소통을 좀 더 원활히 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과 딕 체니 부통령의 중동 순방도 이에 따른 시도다.
▽이〓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는가.
▽미드〓그렇게 본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독일 등에서 부분적으로 지지를 보이고 있다. 동맹국들간에 미국에 대한 일치된 반대는 없지만 얼마나 빨리, 어디까지 미국이 이끄는 대로 따를지에 대해서는 각국간 의견차가 있다.
▽이〓대(對)테러전 이후 외교 현안이 국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미드〓외교정책이 아니었으면 부시 대통령은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국내정책에서는 앨 고어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지만 부시 대통령이 이겼다. 부시 대통령은 9·11테러사태가 일어나면서 외교정책을 완벽하게 수행해야 앞으로의 선거에서 이길 것으로 인식하게 됐다. 빌 클린턴 행정부는 발칸반도 등에서 숨진 미군의 죽음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더 이상 국민을 설득할 필요 없이 강하게 외교정책을 밀고 갈 수 있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추가 테러가 발생할 경우 부시 정부 역시 흔들릴 것이고 선거에서 이기기 어려울 것이다.
▽이〓테러사건 당시에는 앨 고어 전 부통령도 부시 대통령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서가 바뀐 것 같다. 부시 대통령이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는지 의회지도자 등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미드〓진주만 공격 때나, 남북전쟁 때도 그런 논란은 항상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전에 대해서도 왜 오사마 빈 라덴을 놓쳤는지, 중앙정보국(CIA)은 역할을 잘 했는지에 대한 청문회도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핵심적인 지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냉전시대가 40년간 지속될 당시에도 미국민이 지치기는 했지만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대북정책에 대한 비난이 많지만 ‘통일’에 대한 합의가 있기 때문에 한국이 흔들리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도 테러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기본적인 합의가 존재한다.
▽이〓한국 내에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있다. 북한을 너무 구석으로 몰고 있지 않느냐는 얘기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이 발언에 대한 배경과 함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도 든다.
▽미드〓사실 북한이 남한이나 미국에 대해 과거에 퍼부은 발언의 수위에 비춰보면 ‘악의 축’ 발언은 별로 대단할 것도 없다. 문제는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의 의도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협상을 계속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북한은 스스로 강하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대화의 의지가 부족하다. 북한도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비춰 대화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일종의 ‘개점기념 세일’과 같았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기 위한 정책이다. 북한은 진지한 자세로 대화에 응했어야 한다. ‘악의 축’ 발언은 이라크 북한 이란을 똑같이 대우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악의 축’ 발언이 야기한 혼란을 감안하면 적당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 자체보다는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정리〓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월터 러셀 미드 美외교협 선임연구원▼
△예일대 졸업(국제정치)
△뉴스쿨대 세계정책연구소 특별연구원
△하퍼스 매거진 객원 편집자
△현 미국 외교협의회 선임연구원
△현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객원 편집자
△저서:‘Special Providence:American Foreign Policy and How it Changed the World’(2001년)
‘Mortal Splendor:The American Empire in Transition’(1987년)
▼이정훈 연세대교수 ▼
△터프스대 석사(국제정치)
△옥스퍼드대 박사
△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현 미국 전략문제연구소(CSIS) 연구원
△현 동서문제연구원 유럽센터 소장
△저서:‘포괄적 안보:아시아의 이상과 현실’ (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