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사우디와 11년만에 화해

  • 입력 2002년 3월 29일 18시 15분


28일 폐막한 베이루트 아랍정상회담장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사우디 왕세제가 이라크 권력 서열 2위인 이자트 이브라힘 혁명지휘위원회 부의장과 공개적으로 포옹하고 입맞춤을 나눈 것.

91년 걸프전 이후 앙숙처럼 지냈던 사우디와 이라크가 11년 만에 화해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뿐만 아니다. 이라크는 이날 쿠웨이트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불가침합의서에 서명하고 쿠웨이트와 관계정상화를 희망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이브라힘 부의장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도 만나 다음달 재개되는 유엔과 이라크간 2차회담의 성공을 다짐했다.

다른 아랍국가들은 이 같은 이라크의 태도 변화에 부응, 미국의 대 이라크 공격 반대 결의안을 채택했다.

▽화해의 배경과 의미〓이라크와 사우디 등 다른 아랍국가들의 전격 화해는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라크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현실화하고 있는 군사공격을 피하기 위해 다른 아랍국가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했다. 반면 사우디 등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유혈분쟁 해결에 소극적인 미국에 불만을 표시하기를 원했다.

사우디 일간지 ‘알 라이’의 조지 하와트메 편집국장은 “이번 아랍정상회담의 메시지는 미국은 이-팔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하며 이라크 문제는 아랍이 아랍 방식으로 풀어나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아랍정상회담을 주도하고 있는 사우디로서는 대테러전쟁을 이슬람권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국내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미 중동정책에 반감〓이 때문에 아랍국가간의 화해 움직임은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한 반발이며 미국의 역내 영향력이 제한받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뉴욕타임스는 29일 분석했다. 그러나 과거 전례에 비춰볼 때 이라크의 태도가 돌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28일 이라크의 화해 제스처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선대인기자 eod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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