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중재 ‘美 입김’ 안먹힌다

  • 입력 2002년 4월 10일 17시 42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개입을 꺼리던 미국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기자회견(3일)을 기점으로 적극적인 개입정책으로 전환했지만 분쟁 당사자는 물론 아랍국가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9일 사설에서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팔레스타인 자치구역 내에서 병력을 즉각 철수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 것은 줄곧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표방해 온 부시 대통령과 미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같은 날 사설을 통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도 ‘자살폭탄 테러범을 순교자가 아니라 살인자로 비난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 미국이 모든 관련 당사국들로부터 공공연한 도전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4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아랍연맹 소속국 외무장관 회의에서도 아랍국들은 오히려 자살폭탄 테러를 ‘저항의 지속’으로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아랍국들 왜 등돌리나〓아랍국들의 이 같은 차가운 반응은 미국이 친이스라엘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 중동 순방에 나선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8일 첫 방문지인 모로코의 모하메드 6세 국왕으로부터 “왜 여기 왔느냐”는 힐난을 받았다. 하루속히 예루살렘을 방문, 이스라엘군 철수를 관철시키지 않고 분쟁 당사국도 아닌 모로코에 왜 먼저 왔느냐는 뜻.

아랍국들은 부시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철군을 요구하면서도 파월 장관을 닷새 뒤에야 중동에 파견한 점, 그리고 파월 장관이 11일 밤에야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점을 들어 미국이 이스라엘에 군사작전의 시간적 여유를 주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미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는 9일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관리들의 말을 인용, “부시 대통령이 개인적 채널을 통해 단계적 철군을 허용한다는 뜻을 샤론 총리에게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파월 “아라파트 만나겠다”〓파월 장관은 9일 아랍권의 반발을 의식해 아라파트 수반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파월 장관은 지금까지 미국이 고집해 온 ‘선 휴전 후 평화협상’의 노선을 바꿔 “지금 당장이라도 평화협상에 착수할 뜻이 있다”고 밝혀 강한 중재 의지를 내보였다.

▽세계, 폭력중단 촉구〓유엔을 비롯해 미국과 러시아, 유럽연합(EU)은 1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주재로 열린 ‘4자 외무장관급 회담’에서 이-팔 양측이 폭력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성명은 또 이스라엘군의 조기 철군과 아라파트 수반의 폭력종식 노력을 촉구했다.

한편 10일 이스라엘 북부 하이파 인근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발생, 최소 9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다치는 등 폭력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홍은택기자euntack@donga.com·외신종합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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