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수비대의 총격에 분노한 국민의 항의 시위에 의해 12일 권좌에서 축출됐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의 힘에 의해 14일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반(反) 차베스 세력의 구심점인 페드로 카르모나 상공인연합회 회장은 12일 임시 대통령에 취임해 일수로는 이틀, 시간으로는 27시간 동안 혁명적인 조치를 쏟아냈다. 의회를 해산하고 대법관들을 해임했으며 지난해 12월 제정된 사회주의 성향의 49개 법들을 무효화했다.
국가 수입의 80%를 차지하는 국영석유회사(PDVSA)에 새로운 사장을 신속히 임명했으며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정권에는 더 이상 한 방울의 석유도 제공치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카르모나 임시 대통령을 포함, 그가 임명한 12명의 신임 장관들은 대통령궁 지하에 투옥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집권당인 볼리바르 혁명운동의 후안 바레토 의원은 “우리가 다시 나라를 되찾고 있다”면서 “우파 독재정권이 격파됐다”고 선언했다.
베네수엘라 사태 일지 1998년 12월6일 우고 차베스, 빈곤퇴치와 부패추방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 2000년 9월 차베스 대통령,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상회담 개최, 고유가 정책 주도 2001년 10월 차베스 대통령, 아프간 전쟁을 ‘테러’라고 비난, 미국 격노 2001년 11월 49개 사회주의 성향의 개혁법안 의회에서 가결 2001년 12월10일 상공인연합회와 노동자총연맹, 법안에 반대해 총파업 2002년 2월25일 국영 석유회사에 새로운 이사진 임명, 기존 이사진 반발 4월4일 국영 석유회사 경영진, 태업 4월9일 노동자총연맹, 태업지지 24시간 시한부 총파업 4월10일 총파업 하루 연장 4월11일 정권퇴진 요구하는 15만명의 시위대에 국가수비대 발포, 최소한 13명 사망 4월12일 차베스 대통령 퇴진, 상공인연합회 페드로 카르모나 회장, 임시 대통령 취임 4월13일 카르모나 임시 대통령 사임, 디오스다도 카바요 부통령, 차베스 대통령 복귀할 때까지 시한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 4월14일 차베스 대통령, 이틀간 섬에 연금된 뒤 대통령궁에 복귀
이처럼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이유는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지지 및 반대 세력이 격돌하고 있는 가운데 군 내부가 요동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군 고위 지도부는 11일 항의시위대에 대한 발포로 13명이 숨지는 사태가 발생하자 차베스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근본적으로 군부는 차베스 대통령에 의해 장악돼 있다. 13일 차베스 대통령 축출에 반대하는 항의시위가 벌어지자 병사들은 베네수엘라 국기를 흔들며 호응했다. 카르모나 임시정부의 급격한 ‘우회전’도 군부의 반발을 초래했다.
무엇보다 성격이 이질적인 노동자총연맹과 상공인연합회로 이뤄진 차베스 반대 세력의 밑그림 없는 혁명이 ‘1일 천하’를 자초했다. 차베스 대통령이 그처럼 쉽게 축출될지 자신들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빠르게 전개되는 바람에 정권을 수임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이번 사태는 무너뜨릴 수는 있지만 건설하기는 어려운 중남미 반 정부세력과 화려한 수사학으로 인기를 끌어 선거에서 당선될 수는 있지만 국민이 원하는 삶을 챙겨주지 못하는 정권의 한계를 나란히 노출했다.
권력을 재장악한 차베스 대통령이 평화와 화해를 촉구하고 있지만 ‘전부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식의 정권 운영과 정권 반대투쟁의 50년에 걸친 역사에 비춰 국가 안정의 길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외신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