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九州) 북쪽에 있는 후쿠오카(福岡)시 하카타(博多) 중앙부두. 하루 5편 정도 부산을 오가는 대합실에는 해외여행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가벼운 복장을 한 관광객들이 북적댄다. 부산까지는 180㎞ 바닷길, 고속선으로 2시간55분이면 도착한다.
“부산이오? 후쿠오카 사람들에게는 도쿄(東京)나 오사카(大阪)보다 더 친근하고 편한 지역이죠.” 부두대합실에서 만난 후카다 마사루(深田優·45·자영업)는 손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배에 올랐다. 부산행은 연평균 4, 5회. 2, 3일간 골프나 하며 푹 쉬고 돌아올 예정이란다.
음식점 주인 시라가와 아오이(白川葵·54·여)도 이웃집 드나들 듯 부산에 간다. 오전 8시반 첫배를 타면 11시25분 부산에 도착. 삼계탕을 먹으러 자갈치시장으로 달려간다. 목욕탕에서 때를 밀고 마사지, 오후 3시반 마지막 배를 타면 저녁 무렵 돌아올 수 있다. 워낙 자주 다니다보니 부산에서 단골 가게, 단골 택시운전사까지 생겼다.
왕복운임은 할인티켓이 1만3000엔(약 13만원). 규슈 내 다른 도시에 가는 것보다 싸다. 종업원 8명도 월 3000엔씩 모아 매년 2박3일간 다녀온다. 주변 기업체들은 송년모임이나 신년회, 신입사원 교육을 부산에서 실시하는 곳이 많다.
“여자들 사이에 부부싸움 후 부산에 가서 기분전환하고 온다는 말이 유행이에요. 쇼핑으로 화가 풀리면 자갈치시장에서 산 생선으로 저녁상을 차린다나요.”
이곳에서 한국은 더 이상 외국이 아니다. 시간, 비용면에서 거의 1일생활권이다. 다른 게 있다면 여권이 필요하다는 것뿐이다. 한 여행사에서는 아예 규슈관광 3박4일 코스에 부산을 넣었다. ‘후쿠오카에 올 때는 여권을 가져 오라’는 게 이 상품의 광고문구다.
이 지역은 옛날부터 한일 항로의 관문이었지만 그래도 한국은 배로 반나절이나 걸리는 ‘먼 나라’였다. 또 과거 아픈 역사 때문에 서로 반목과 경계를 늦추지 못했다. JR규슈가 하카타∼부산 고속항로를 개설한 1991년만해도 승객은 4만5000명에 그쳤다.
지난해 승객은 여섯 배가 넘는 30만명, 이중 일본인이 23만5000명이다. 인근 시모노세키(下關)와 부산을 오가는 관부(關釜)페리 등을 합치면 50만명을 훌쩍 넘었다. 이 지역 항공노선까지 포함하면 연간 72만명, 한일간 왕래자 354만명의 5분의 1규모다.
규슈에서 한국으로 가는 뱃길은 어느새 황금노선으로 떠올랐다. 한국 대보해운이 2월 말 하카타∼부산을 하루 1회 왕복하는 ‘코비’를 취항한 데 이어 월드컵 이전에 하루 3회로 늘린다. 또 한국 무성과 일본 간몬기선은 이달 26일부터 기타큐슈(北九州)∼울산노선을, 7월초부터는 기타큐슈∼부산노선을 개시한다. 이 추세라면 ‘100만명 교류시대’는 멀지 않다.
이같이 왕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다 보니 후쿠오카는 한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긴다. 번화가인 나카스(中洲)에는 한국의 포장마차를 본뜬 라면집이 수백m씩 늘어서 있고 어느 식당이든 김치나 부침개가 기본메뉴에 올라있다.
“이렇게 가까운데 사이가 나쁘면 서로 불행하지요.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이웃 아닌가요.” 한국영화가 좋아 한 달에 한 두 번씩 부산의 영화관에 다녀온다는 한 직장여성(30)의 말이다.
일제강점기 연간 최고 300만명을 수송했다는 관부연락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강제연행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이 뱃길이 월드컵을 앞두고 새로운 한일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후쿠오카〓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