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이환식교수/佛국민 정치권에 실망 확산

  • 입력 2002년 4월 23일 18시 26분


리오넬 조스팽 총리의 대선 패배는 사회당 등 기존 좌파 세력들이 자초한 결과다. 5년 전 거세게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열풍의 바람막이로 프랑스 국민은 사회당 내각을 선택했다.

그러나 사회당 내각은 노동시장 유연화 등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해 좌파의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했다. 이 때문에 좌파 지지자들 사이에 ‘이게 무슨 좌파냐’라는 자괴감과 실망감이 폭넓게 퍼졌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엄밀히 말해 좌파에 대한 거부라기보다는 좌우파를 막론하고 기득권 정치세력에 대한 경고의 성격이 짙다. 기득권 정치세력에 대한 실망감으로 좌우파의 양대 세력 지지자들이 ‘본격 좌파’를 자임한 노동자투쟁당(LO)의 아를레트 라기예 후보와 극우파인 장마리 르펜 국민전선(FN) 당수 지지로 조금씩 이동한 것이다. 이는 조스팽 총리뿐만 아니라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매우 낮았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기권율도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런 가운데 굳건한 고정표를 가진데다 실망한 우파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르펜 당수가 반사이익을 본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적 불안도 르펜 당수에게 도움이 됐다. 최근 몇 년 동안 프랑스에서는 각종 부패 스캔들이 잇따르고 전통적 사회안전망이 붕괴됐으며 고용불안이 심화됐다. 이념보다는 치안문제가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이었다는 점에서도 프랑스의 사회환경이 얼마나 악화됐는지를 알 수 있다.

이번 투표 결과는 유럽의 전반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맞서 90년대 후반 유럽 각국에서 집권했던 좌파 정부에 대한 배신감이 우파세력의 확산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패배의 충격은 프랑스 좌파에 보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예상치 못한 르펜 당수의 부상으로 6월에 있을 총선에서는 좌파 표가 재집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우파 대통령과 좌파 내각이라는 ‘좌우동거정부(Cohabitation)’가 또 한차례 성립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장기적으로는 사회당 등 프랑스 좌파들의 정체성 모색이 진지하게 이뤄질 것이다.

이환식 프랑스 외교전략연구원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