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시라크 대통령은 좌우 동거 정부하의 허약한 입지와 미국의 9.11 테러 등에 휩쓸려 기대했던 만큼의 외교적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 압도적 지지로 재선될 것으로 보이는 시라크가 먼저 외교 분야에서 목소리를 높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파리 정가에서는 집권 2기의 시라크 대통령이 유럽과 아시아의 관계 강화를 적극 추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시라크 대통령은 2000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EM)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브라보, 대성공’이라는 메모를 건네는 등 ASEM 성공에 각별한 정성을 쏟아왔다.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에는 간단치 않은 복병들이 기다리고 있다. 먼저 라팔 기종의 차세대전투기(FX) 사업 탈락의 앙금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은 대선의 와중에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라팔 선택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것”이라는 친서를 보내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었다. 일각에서는 우파 득세가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재선된 시라크가 한국에 보다 강한 제스처를 보일지 모른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의 이지하 정무참사관은 “FX 사업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헬기 수출을 비롯해 프랑스가 한국 군수시장에 관심이 많은 만큼 라팔의 탈락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민의 감정과 연결된 외규장각 문서 반환 문제와 ‘개고기 시비’도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북한에 대해 프랑스는 유럽연합(EU) 15개국 중 미수교 2개국에 속할 정도로 일정한 거리를 두어 왔다. 우파인 시라크 대통령의 재선 등 전반적인 프랑스 사회의 우경화로 미루어 프랑스 정부가 대북관계 개선을 서두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