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하는 자국민을 편하게 하기 위해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하는 국가들이 크게 늘고 있다. 우리나라도 71개국과 면제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다 보니 비자가 필요한 국가의 방문은 상대적으로 번거롭고 귀찮다. 그 중에서도 미국이 비자 발급에 가장 까다로운 나라로 꼽힌다. 9·11 테러 후 외국인의 출입국을 옥죄더니 얼마 전 지문 날인과 홍채 촬영까지 요구하겠다는 법안을 만들었다. 특히 “미국에 오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왜 오는지, 와서 무엇을 하고 언제 떠나는지 알아야 한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외국인을 잠재적 범법자로 보는 것 같아 불쾌하다.
▷미국이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대상에는 한국인이 포함된다. 서유럽의 대부분과 일본 등 29개국 국민은 단기체류 때 비자발급을 면제받지만 한국인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주한미국대사관에 늘어선 비자 신청자의 줄이 더욱 길어지고 99년 현재 8.2%나 되는 비자거부율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 않아도 주한미대사관은 3월 이미 36개나 되는 질문이 나열된 비자신청양식에 군 경력을 포함한 18개의 질문을 추가해 한국인을 화나게 했다. 국제범죄조직은 미국 비자가 붙은 한국여권을 최고 2만달러에 거래하고 있다는데 여권도난도 더욱 늘어날 것 같아 걱정이다.
▷미국은 한국인이 많이 찾는 나라다. 지난해만 해도 해외여행자의 11.6%가 미국을 방문했다. 미국의 경직된 태도는 분명 한국 여행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문을 찍고 홍채 사진까지 준비해야 할 바에야 미국에는 가지 않겠다”고 흥분하는 사람이 나올 만하다. 여행을 자유롭게 하는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고 인권 침해 논란까지 부를 수 있는 강경한 비자정책에 반발해 미국 여행을 포기하는 사람이 다른 나라에는 왜 없겠는가.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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