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은 최근 3주 동안 러시아와 유럽 중앙아시아를 오가며 5차례의 주요 정상회담을 주도했다. 이런 노력으로 서방과의 적대적인 대립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협력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성과를 거뒀고 소련 해체 후 잃었던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도 상당 부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르익는 서방과의 협력관계〓6일 벨기에 브뤼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에서 첫 NATO-러시아회의가 열렸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사상 처음으로 NATO 19개국 국방장관과 대등한 자격으로 인도-파키스탄 분쟁 등 국제적인 안보 현안을 논의했다. 이 회의는 지난달 28일 푸틴 대통령이 NATO 정상들과 서명한 로마선언의 외교적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이달 중순부터 세계무역기구(WTO)와 가입 협상을 재개할 예정이다. 29일 러-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EU가 “러시아에 시장경제 지위를 부여하겠다”고 약속한 후 마이크무어 WTO 사무총장이 “내년 9월 WTO 각료회의 이전에 러시아의 WTO 가입이 성사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러시아의 ‘세계 경제 편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정계와 군부 보수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적극 협력하는 친서방 정책을 추진하며 서방의 신뢰를 얻었다. 그는 정치적 이념이나 군사적 대립보다는 서방의 지원을 얻어 경제 재건에 주력하겠다는 ‘실리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전통적인 우방 달래기〓푸틴 대통령은 4일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 개선이 중국 등 전통적인 우방과의 관계를 훼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방과의 협력관계 구축에 주력하느라 그동안 소홀히 했던 중국과 독립국가연합(CIS), 제3세계권 챙기기에도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정상회의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직접 대화를 성사시키지는 못했지만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 총리와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을 만나 오랜만에 러시아가 주요 국제현안의 중재자로 나서는 모습을 연출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 인민일보와의 회견에서 “다극화된 세계 구축과 인류의 운명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공통된 이념으로 동서가 묶여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러시아가 대서양에서 중국을 잇는 유라시아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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