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병원 수술실. 7세짜리 여자 어린이가 들어왔다. 의사가 환자 손목의 이름표를 확인한다. 그후 편도선을 잘라내고 귀에 튜브를 집어넣는 편도선 절제와 아데노이드(인두편도) 절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런데 누군가가 환자의 이름을 다시 확인하다가 외친다. “이런, 애가 바뀌었네!”
이는 실제 사례다. 미국 내과의학 전문지인 격주간 ‘내과학 연보’는 의사들의 엉뚱한 실수로 인한 의료사고 사례를 소개하고, 원인과 대안을 제시하는 시리즈 연재에 나섰다고 뉴욕타임스가 18일 보도했다. ‘진료의 질 향상을 위한 대토론(Quality Grand Rounds)’이 시리즈의 제목. 병원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의료사고 사례들을 소개한 뒤 원인을 분석, ‘실수로부터 배우자’는 의도다. 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로버트 왁터 박사(캘리포니아 의대)는 “의료사고를 숨기려고만 하는 의료계의 관행 때문에 결과적으로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며 “이 같은 실수를 줄이기 위해 실수 분석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사들의 일종의 ‘자기반성문’인 셈.
왼쪽-오른쪽 다리를 바꿔서 절단하기, 좌뇌-우뇌를 바꿔서 수술하기, 화학요법 과다로 암환자 사망시키기 등 어이없는 의료사고는 드물지 않게 소개돼 왔다. 99년 일본에서는 심장판막수술과 폐기종제거수술 환자가 서로 뒤바뀌었으며, 왼쪽 눈 대신 오른쪽 눈을 수술한 사례도 있었다. 미 의학협회에 따르면 이 같은 실수 때문에 미국에서만 해마다 4만4000∼9만8000명이 사망하고 있다는 것.
‘내과학 연보’는 사례 분석을 통해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종사자간 의사소통이 잘 안되거나 공식적인 업무체계를 무시하는 것이 이 같은 의료사고의 주된 원인들이라고 지적했다. 또 환자에 대한 병력관리 소홀과 전산체계 미비 등도 원인에 속한다는 것. 한편 의사나 간호사가 집에 빨리 가려고 허둥지둥하다 환자에게 엉뚱한 처치를 내린 경우도 있고, 비행기 시간에 맞추려고 위급한 환자를 돌보지 않을 때도 있다고 이 연보는 소개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한국-미국 의료 소송 차이점 | ||
  | 한국 | 미국 |
입증 책임 소재 | 환자 | 의사 |
의사의 민사 책임인정 여부 | 불인정 | 인정 |
의료사고 건당평균 배상액수 | 2352만원 | 350만달러(43억원) |
의료사고 배상책임보험 가입비율 | 17% | 약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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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최재천 변호사▼
‘의료사고를 줄이자’는 말은 성립할 수 있지만 ‘의료사고를 없애자’는 말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의료사고를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사회적 위험성 가운데 하나로 인식할 때 정상적 법 절차를 통한 합리적 해결의 길을 열어갈 수 있다.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의료의 질을 높이고 의료 현장의 각종 위험요소들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의료사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의사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과오를 시인, 공개하고 있다. 미국의사협회는 국가환자안전재단(NPSF)을 설립해 환자 안전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퍼블릭 시티즌 등 의료감시 시민운동단체도 의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공개하고 있다. 17%에 불과한 의사들의 의료배상 책임보험 가입률도 높여야 한다. 미국에서는 보험 가입률이 100%에 가깝다.
법적 시스템 개선도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소송보다는 형사고소 등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많다. 미국에서처럼 민사상 손해배상을 통해 벌을 주는 ‘징벌적 위자료’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의료사고를 입증하는 책임이 의사에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환자에 있어 현실적으로 책임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형사고소를 해도 의사가 형사책임을 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