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보스니아 평화유지軍 연장안’ 거부

  • 입력 2002년 7월 1일 19시 36분


'미국은 반대한다' - 뉴욕AP연합
'미국은 반대한다' - 뉴욕AP연합
1일부터 법적 효력이 발생한 국제형사재판소(ICC)를 무력화하기 위해 미국이 ‘벼랑끝 전술’을 구사했다.

미국은 ICC의 출범 전야인 지난달 30일 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보스니아 평화유지활동의 6개월 연장안에 대해 기습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15개 안보리 이사국 중 반대한 국가는 미국뿐이다. 이로써 ICC의 원활한 운영은 물론 1948년 중동에서 처음 가동된 이후 국제평화 유지의 기틀이 돼 온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이 52년 만에 중대한 위험에 처했다.

존 네그로폰테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이날 “미군에 대해 ICC가 면책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PKO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해 보스니아를 포함, 세계 15개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PKO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PKO 예산(27억7000만달러)의 27%를 담당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일 “이 같은 벼랑끝 전술은 ICC에 반대해 온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가장 극명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98년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ICC의 출범을 규정한 로마 협약에 서명했으나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부 출범 이후 보수파가 외교를 장악하면서 ICC 불참으로 선회했다. 부시 행정부는 불참에 그치지 않고 ICC 출범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미국이 문제삼는 조항은 “ICC 참여국 안에서 범죄가 일어났을 때는 ICC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와 국민에 대해서도 ICC가 재판 관할권을 갖는다”는 것.

네그로폰테 대사는 “ICC에 불참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면책권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안 그래도 PKO에서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정치적 재판의 위험을 부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ICC의 출범을 주도한 영국과 프랑스는 특정국가를 예외로 인정하는 한 국제 정의를 세울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장 다비드 레비트 유엔주재 프랑스 대사는 “구 유고 전범 국제재판이 열렸지만 기소된 미군은 단 한 명도 없었다”며 “이론적인 위험을 근거로 면책권을 강요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안보리 이사국들은 미국의 거부권 행사 이후 긴급회의를 갖고 보스니아 PKO시한을 72시간 잠정 연장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영국과 프랑스는 협상시간을 벌기 위해 활동시한을 15일까지 연장하려 했으나 미국이 거부했다.

사흘내 합의가 도출되지 않으면 1500명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유엔경찰병력 훈련임무(UNMIBH)는 3일 밤 12시(현지시간)를 기해 종료된다.

1만9000명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평화유지군(SFOR)은 95년 데이턴 평화협정에 따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파견한 것이어서 유엔안보리와 직접 관련이 없다. SFOR에는 미군 3100명도 참여하고 있다.

향후 가능성은 미국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유엔의 경찰병력 훈련임무를 나토가 인수하는 것. 그러나 독일은 유엔안보리의 결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PKO에 영향을 주는 이처럼 중요한 문제를 놓고 안보리가 분열돼 있을 만큼 국제사회에 여유가 있지 않다”며 신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이처럼 미국과 안보리 이사국들의 대립은 “미국의 ‘나홀로(go-it-alone)’ 태도에 대한 다른 유엔 회원국들의 점증하는 반감에 의해 격화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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