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주 랭글리의 CIA 본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게 있다. 바로 ‘사담 길(Saddam Street)’과 ‘라덴 골목(Usama Bin Lane)’이라고 쓰인 도로 표지판. 9·11테러 이후 테러 관련 건물들이 우후죽순 들어서자 식료품상 등 CIA에 물품을 조달하는 업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설치한 것이다.
본부 사무실은 슈퍼컴퓨터의 ‘윙윙’대는 소리와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 벨소리, 모니터용 TV 소리로 가득하다. 은밀하게 공작(工作)에 몰두하고 있는 영화 속 장면과는 딴 판이다. CNN이 여전히 모니터 대상 1호지만 지금은 오사마 빈 라덴이 가끔 출현하는 아랍계 위성방송 ‘알 자지라’의 비중도 크다.
![]() |
가장 바쁜 곳은 역시 대(對)테러센터(The Counterterrorism Center). 86년 출범한 이 센터는 정보분석가만 1100여명에 이르는 매머드급 부서다. 첩보수집 요원들의 수는 극비사항.
이 센터에는 하루에 2500건가량의 첩보보고서가 쏟아져 들어온다. 그래서 이 센터는 밤낮이 따로 없다. 이들을 위해 구내식당은 주말에도 24시간 문을 연다.
대 테러센터에서는 매일 10∼20건의 정보보고서를 만들어 80여 주요 행정기관에 보낸다. 또 그 날의 주요 정보만을 골라 ‘테러 위협 일일 보고서(Threat Matrix)’를 작성,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다. 이 보고서의 사본은 톱 200위 내에 드는 고위관리들에게도 보내진다.
예전엔 ‘비공식 권력의 심장부’라고 불리는 조지타운의 사교파티 초청 명부가 ‘워싱턴의 A리스트’(권부 실력자 리스트)로 통했지만 지금은 이 보고서를 받아야만 실력자로 평가받는다.
테러 센터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고 사소한 것 같은 수백만개의 데이터를 결합해 테러의 단서를 추려내는 작업을 한다. 테러센터는 이 같은 작업을 통해 올 3월 알 카에다 조직의 작전사령관 아부 주바이다를 체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빈 라덴의 측근 24명 가운데 14명이 붙잡히지 않은 상태다. 또 수천명의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여전히 활동 중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CIA 요원들은 오늘도 밤낮을 잊은 채 이들의 뒤를 추적하느라 씨름하고 있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