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마을 현장을 가다 4]스코틀랜드 '핀드혼 마을'

  • 입력 2002년 7월 21일 17시 53분


《영국 북쪽 끝 모레이만(灣)에 있는 핀드혼(Findhorn) 마을. 스코틀랜드의 여느 시골 마을처럼 아늑한 풍경이다. 무성한 나무들과 잘 조성된 정원, 그리고 잘 가꿔진 농장을 보면 이곳이 불과 40년 전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불모지였다는 소개에 의심이 갈 정도다. 안내를 맡은 크레베 카타리나(35·여)가 마을을 소개한다. 8년 전 이 공동체에 합류해 지금은 공동체를 운영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이 마을이 만들어진 것은 40년 전인 1962년. 그해 11월 피터, 에일린 캐디 부부, 이들의 자녀 크리스토퍼, 조너선, 데이비드와 도로시 매클린 등 여섯 사람이 삭막한 이곳 모래밭에 정착한 것이 핀드혼 공동체의 시작이다. 이들은 매서운 편서풍이 끊임없이 불어대는 황야를 일구기 시작했다.》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어요. 척박한 모래밭에서 최고의 질을 자랑하는 채소들이 생산된 것입니다.”

"일하는 것이 곧 학습" 핀드혼 공동체에서 농장일을 맡고 있는 제인 위버(45) - 핀드혼=김성규기자

카타리나씨는 불모지에서 커다란 양배추가 기적처럼 자라자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초자연적 존재와의 교감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게 마을 사람들의 설명이다.

당시의 작은 밭은 이제 4만㎡의 대규모 농장으로 바뀌었다. 자연친화적인 생태공동체로 성가도 높아졌다. 이 때문에 매년 70여개국에서 1만여명이 찾아온다고 한다.

핀드혼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은 무엇일까. 점심 식사시간. 정오경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30여명쯤 되자 음식을 앞에 놓고 둘러서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 손을 잡는다. 그리고 노래와 함께 기도에 들어간다. 3, 4분 정도의 길지 않은 의식이다.

기도를 마친 후 손을 푸는 방식도 따로 있다. 기도를 끝낸 사람이 옆 사람의 손을 꼭 쥐면 옆 사람은 자기 옆 사람의 손을 꼭 쥔다. 이렇게 ‘파도타기’를 해서 마지막 사람까지 신호가 간 후에야 모두 함께 손을 푼다.

“조율(Tunning)이라는 의식입니다. 식사를 할 때나 일을 할 때나 춤을 출 때도 모두 손을 잡습니다. 손을 통해서 서로의 마음이 통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느끼는 거지요.”

카타리나씨는 스스럼없이 손을 잡는 이 의식만으로도 경건함에 북받친 나머지 눈물까지 흘리는 이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핀드혼은 특정종교와는 무관하다. 그러나 종교적 색채로 가득 차 있다. 자연과 영혼의 대화를 나누기 위한 명상의 장소들이 널려 있는 것이 그 사례. 노천 성소(Open Air Sanctuary)는 설립 초기 이 공동체를 이끌었던 피터 캐디를 기리기 위한 곳으로 묵상의 장소로 쓰인다. 공원 성소(The Park Sanctuary)는 피터 캐디의 부인인 에일린이 자신의 영적 경험을 구성원들과 공유하던 곳이다.

또 자연 성소(Nature Sanctuary)는 자연과의 대화의 집. 민턴 하우스(Minton House)는 기독교와 힌두교 불교 등 영적 전통을 포괄하는 영성 교육장. 매일 아침저녁으로 경건의 시간이 있고 매주 수요일 오전 9시에는 전체 명상의 시간이 있다.

명상 못지않게 강조되는 것이 노동이다. 피터 캐디는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주민들은 1주일에 35시간을 일해야 한다. 작업장별로 주당 2∼3시간 단합의 시간도 있다.

핀드혼 공동체에 처음 온 사람들은 농장에서 일하면서 자연을 깨닫기 시작한다. 농장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음식물을 공급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주요 학습 현장이다.

비닐하우스에서 만난 제인 위버(45·여)는 일요일인데도 스스로 나와 잡초를 뽑고 있었다. 그는 “비닐하우스에서 시금치, 멜론, 호박, 배추, 후추, 콩 등 20여가지의 작물을 유기농법으로 재배한다”면서 당근 배추 등과 나란히 재배되고 있는 금송화를 가리켰다. 금송화는 식용 채소는 아니지만 비닐하우스 안의 공기를 정화시켜 작물들을 건강하게 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했다. 해충은 죽이지 않고 양쪽 문을 열어 바람에 날려보낸다. 지극한 생명존중사상이다. 이들은 채식주의자들로 공동식당에서도 육류는 계란 외에 일절 내놓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의 대가는 크지 않다. 카타리나씨는 한 달에 320파운드(약 58만원)를 받는다. 대신 식사는 무료로 제공된다.

핀드혼은 분기마다 열리는 임원회의에 의해 운영된다. 10명으로 구성된 임원회의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의사를 결정한다. 임원회의 밑에는 행정위원회가 있으며 ‘조정자’들이 각 부문을 이끌어간다. 의사결정은 만장일치가 원칙이다.

핀드혼에서 현재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은 210명 안팎. 주 소득원은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임을 깨닫게 하는 영적 프로그램부터 환경친화적 건축과 유기농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 영어와 명상 프로그램 등 다양하다. 지난 회계연도에 4144명이 이곳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로부터 얻은 수입은 100만1000파운드. 공동체 전체 수입의 71%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드혼은 지난해 18만6000파운드(약 3억3800만원)의 적자를 냈다. 그러나 ‘생태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지속가능한 인간 정주지’로서의 꿈이 멀어진 것은 아니다. 세계 곳곳의 비슷한 공동체들과 공동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치면서 자금이 많이 소요되고 있는 탓이다. 생태공동체네트워크(GEN)의 전진기지로서 핀드혼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독특한 공동체 의식" 30여명의 핀드혼 주민들이 공동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 전 '튜닝'으로 부르는 조율 의식을 갖고 있다. - 핀드혼=김성규기자

▼핀드혼의 에코빌리지 프로젝트▼

에코빌리지(생태마을) 프로젝트는 핀드혼 공동체가 1980년대 초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는 사업 가운데 하나다. 자연과의 공생을 생활 속에서 직접 실천하자는 것으로 주거 공간부터 먹을거리, 에너지원 등을 모두 자연친화적인 것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에코빌리지 프로젝트의 기본 원칙에 대해 리처드 마크 코츠 공동체 홍보팀장은 “자연이 주는 것 이상을 자연으로부터 가져다 쓰지 않는다”고 요약했다.

에코빌리지 프로젝트는 이러한 기본 원칙 아래 다음 네 가지에 중점을 둔다. 첫째, 환경 친화적인 주거 건물을 세울 것. 둘째, 재사용 가능한 에너지 공급 체계를 갖출 것. 셋째, 지역 단위에서 유기 농산물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것. 넷째, 문화적 다양성과 구성원들의 총체적 건강을 지향하는 사회적 가족 공동체를 실현할 것.

코츠 팀장은 “이 프로젝트에 따라 공동체 내에 에코 단지를 지정하고 이곳에 27채의 에코 하우스(환경친화적 주거물)를 지었다”며 “앞으로 3∼4년 내에 40채를 추가로 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에코 하우스 건립은 돈이 많이 들어 외부 사람들의 입주와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에코 하우스는 여러 형태가 있지만 창문을 많이 만들어 태양열을 십분 이용하면서도 지붕에 잔디를 깔아 보온효과를 높이는 것처럼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에코 단지는 오폐수를 처리하는 ‘리빙 머신’이라는 이름의 정화장치로 유명하다. 리빙 머신이 설치된 그린하우스에는 향기를 뿜어내는 수생식물들이 가득 재배되고 있어 하수처리장이 아니라 향기로운 온실 같은 분위기다. 오폐수는 개구리밥과 같은 수생식물과 물벼룩 물달팽이와 같은 수생동물을 차례로 담아놓은 탱크를 통과하면서 자연 정화된다. 지금은 그냥 하수구에 흘려보내고 있지만 농업용수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수질이 괜찮다. 음식물 쓰레기는 따로 모아 썩힌 뒤 농장의 거름으로 쓴다.

사시사철 부는 바람을 이용하는 무공해 풍력발전소도 만들고 있다. 마을 변두리에 75㎾의 전력 생산 능력이 있는 풍력 발전 장치가 세워져 있는데 이 장치 하나가 마을 전체 전력 소비의 20%를 충당한다. 앞으로 두 기의 풍력발전소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체험 프로그램 참여하려면▼

핀드혼은 공동체 체험을 위한 ‘체험주간’, ‘공동체 삶 탐구’ 등 1주일짜리 다양한 단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공동체 일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체험주간 참여를 시작으로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1974년부터 시작된 체험주간 프로그램은 핀드혼 공동체 삶의 핵심을 소개하는 중요한 통과의례로 조율 의식, 단체 작업, 토론, 명상, 춤, 자연 체험 등 다채로운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농장이나 식당 등에서 일하는 데도 비중을 두고 있다. 노동을 통한 영적 훈련이 강조되기 때문. 참가자는 영어로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하며 1주일 동안의 체류비용은 295파운드(약 53만원).

장기 체류를 원한다면 ‘공동체에서 살기 프로그램’을 신청해야 한다. 비용은 석달 동안 1440파운드(약 260만원).

그러나 공동체의 완전한 일원이 되려면 이것을 마치고 1년 기간의 ‘공동체 일년 프로그램’을 더 이수해야 한다. 이때부터는 한 부서에 소속돼 일을 하지만 보수는 없고 연간 체재비로 4000∼6000파운드의 비용을 내야 한다.

그 뒤 공동체에서 원하는 부서에 지원해 받아들여지면 재단으로부터 일정액의 월급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체험주간에서 ‘공동체에서 살기 프로그램’ 등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매 단계 인사 담당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핀드혼(영국 스코틀랜드)〓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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