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장쩌민(江澤民·76) 국가주석의 퇴진 여부에 국한된 것처럼 보였던 권력이양이 장 주석의 유임을 지지하는 노년층과 순조로운 권력승계를 원하는 장년층 간의 갈등으로 확산될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22일 “올 가을 퇴진할 것으로 점쳐지던 장 주석이 유임쪽으로 돌아서면서 개혁·개방 이후 가장 심각한 정치적 갈등이 예고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가을에 열릴 공산당 16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의 주요 의제를 결정하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이 같은 권력 투쟁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다이허 회의 최대 관심사○
22일 시작된 베이다이허 회의의 가장 큰 관심사는 권력이양 문제다. 장 주석을 정점으로 한 ‘3세대 지도부’에서 후진타오(胡錦濤·60) 국가 부주석을 중심으로 한 ‘4세대 지도부’로의 권력이양은 올 초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지난달 초 갑자기 장 주석의 ‘3개 대표 이론(공산당이 △선진 생산력 △선진 문명 △광범위한 인민 대중의 근본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이론)’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전이 시작되면서 장 주석의 유임설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장 주석의 퇴진 여부는 아직도 안개 속에 싸여 있다. 따라서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유임 지지파와 퇴임 지지파 사이에 치열한 격론이 벌어질 것이라고 IHT는 보도했다. 장 주석 퇴진 문제가 혼미를 거듭하면서 9월로 예정됐던 당 대회도 11월 말로 늦춰질 예정이다.
장 주석의 ‘3개 대표 이론’을 당헌(黨憲)에 삽입하는 문제도 이번 회의의 주요 의제다. 장 주석의 이 이론이 당헌에 삽입되면 장 주석은 자연스럽게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과 같은 반열에 오른다는 게 서방 외교관들의 분석이다.
○노년-장년층 권력 투쟁○
장 주석의 유임을 지지하는 쪽은 당(黨) 군(軍) 정(政)의 고위급 지도자들과 31개 성 및 자치구의 성장들로 대부분 60대다. 이들은 노년층을 장년층으로 갈아끼우는 연경화(年輕化)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온 후진타오 부주석이 권력을 승계할 경우 물러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보다 아래인 당 군 정의 중간 간부들은 “장 주석이 계속 집권할 경우 당의 합법성에 위기가 올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76세인 장 주석이 계속 주석직을 유지할 경우 97년 장 주석의 주도로 도입된 ‘당 정치국원 70세 이상 퇴진’과 ‘75세 이상 국가주석 취임 불가 원칙’이 무너진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물론 이들은 궁극적으로 장 주석 퇴진을 계기로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려 한다.
○평화적 권력승계 무너질까○
1949년 공산혁명 이후 중국에서 권력이 순조롭게 이양된 것은 덩샤오핑이 장 주석에게 물려준 것이 처음. 나머지는 모두 최고 권력자가 사망했거나 권력 투쟁을 통해 승계됐다.
따라서 장 주석의 권력이양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권력이동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특히 1956년 반(反)우파 투쟁과 1960년대 문화혁명,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등 중국사회의 대격변은 언제나 당내 균열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이번 갈등이 어떤 형태로 번질지는 누구도 점치기 어려운게 사실이다.
베이징의 외교분석가들은 “최고 권력자가 후임자를 선택하는 중국 공산당의 관례를 깨고 덩샤오핑이 후임인 장 주석과 장 주석의 후임자까지 결정했을 때 이미 이 같은 갈등은 예고됐던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 싸움은 공산혁명 이후 처음으로 이데올로기가 아닌 파워(권력)만을 놓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권력의 핵, 당 정치국 상무위원 7인 | |||
이름 | 나이 | 직위 | 당초 예상됐던 진퇴 여부 |
장쩌민 | 76 | 국가 주석, 당 총서기, 중앙군사위 주석 | 국가주석과 당총서기직 이양 |
리펑 | 73 |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 | 퇴진 |
주룽지 | 73 | 국무원 총리 | 퇴진 |
리루이환 | 68 |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 유임 |
후진타오 | 60 | 국가 부주석 | 국가주석과 당총서기직 승계 |
웨이젠싱 | 71 | 당 기율 검사위원회 서기 | 퇴진 |
리란칭 | 70 | 부총리 | 퇴진 |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베이다이허 회의▼
베이징(北京) 인근 보하이(渤海)만의 하계 휴양지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열리는 중국 지도부 연석회의를 말한다. 7월 하순에 시작해 약 2주간 계속된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공산당 중앙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현안에 대한 지도부의 입장을 조율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
올해 회의는 가을 제16대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개최를 앞두고 열린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16전대에선 장쩌민(江澤民)주석과 리펑(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양축으로 이뤄진 제3세대 지도부의 퇴진문제 등 당 지도부의 개편 여부가 최대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회의에서는 국유기업 개혁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문제가 주요 의제였으며, 이 과정에서 장 주석이 주룽지(朱鎔基) 총리의 급진개혁론에 제동을 걸어 주 총리가 사임의사를 표명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종환기자 ljhzi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