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美 좌파지도자 열풍

  • 입력 2002년 7월 26일 17시 55분


《경제불안에 휩싸인 남미 지역에서 좌파 정치인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90년대 미국의 권고에 따라 시장개방 정책을 추진했던 우파 정권들이 속속 경제난에 봉착하자 이에 대한 반발 분위기로 좌파 정치인들의 지지도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그러나 경제난에 대한 특별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좌파 정치인의 부상은 오히려 경제불안을 심화할 우려가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좌파 세력 확대〓좌파 정치인이 가장 득세하고 있는 곳은 남미의 양대 경제대국이자 경제난이 가장 심각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경제난 심화로 대통령 선거를 내년 9월에서 3월로 앞당긴 아르헨티나에서는 좌파 야당인 ‘평등 공화국을 위한 대안(ARE)’의 여성 후보 엘리자 카리오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현재 카리오의 지지율은 20%로 집권 페론당 후보인 카를로스 메넴 전 대통령(7%)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법대 교수였다가 4년 전 정치에 입문한 카리오가 내건 가장 큰 선거공약은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관계 단절. 그는 “경제불안의 가장 큰 원인은 시장개방과 민영화를 앞세운 IMF 정책 때문”이라며 “IMF를 배제한 경제개혁만이 아르헨티나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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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열리는 브라질 대선에서는 좌파 야당인 노동자당(PT)의 루이스 이나시우 다 실바 후보가 집권당 후보인 호세 세라 전 보건장관을 제치고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그가 내건 최대 정책은 재정지출 확대. 다 실바 후보는 현재 브라질이 3000억달러의 막대한 국가부채를 짊어지고 있지만 실업률과 빈곤 퇴치를 위해서는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볼리비아에서는 지난달 30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 사회당(SP)의 에보 모랄레스 후보가 2위에 올랐다. 그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마약 재배를 양성화해 농민들의 부채를 덜어줘야 한다는 공약 때문. 볼리비아산 마약 유입으로 고민해온 미국은 지난달초 모랄레스 후보가 당선될 경우 볼리비아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위협’ 이후 지지율이 오히려 상승한 모랄레스 후보는 다음달 2차 투표에서 집권당 후보인 곤잘로 산체스 데 로사다 전 대통령과 격돌한다.

조만간 선거 일정이 없는 다른 남미 국가들에서는 좌파 정당들이 시위 조직을 통해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페루 노동당은 지난달 국영 전력회사의 해외매각을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해 매각 계획을 중단시켰다. 파라과이 최대 야당인 사회당은 지난달 국영 전력회사의 민영화를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해 정부가 비상사태까지 선포했다. 에콰도르 야당인 민주시민당도 5월 17개 국영 송전회사 매각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제난 해소는 의문〓남미의 좌파 정치인들은 산업국유화, 재정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보호주의 정책을 내걸고 있다. 90년대 시장개방, 민영화, 재정축소 등을 추진한 우파 정권들의 자유시장 정책이 실업률 상승과 경제 후퇴만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다수 남미 국가에서 세수가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확대를 추진하는 좌파 정치인들의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IMF와의 관계 축소 또는 단절을 추진할 경우 외국인 투자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브라질에서는 다 실바 후보의 당선이 점차 확실해지면서 레알화 가치가 계속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지난해 300억달러에 달했던 외국인 직접투자는 올해 200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워싱턴 소재 남미경제연구소인 ‘미주간교류(IAD)’의 피터 하킴 소장은 “남미에서 좌파 세력이 급부상하면서 90년대를 풍미했던 민주주의, 자유시장, 친미(親美) 등 3대 정책이 모두 사라지고 있다”면서 “좌파 정권은 단기적으로 국민의 불만을 해소할 수는 있겠지만 경제회생을 위한 중장기적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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