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文學 외설 논쟁 ‘표현의 자유’ 승리

  • 입력 2002년 7월 26일 17시 55분


러시아의 작가 블라디미르 소로킨(49 ·사진)이 러시아 문학사상 첫 외설 논쟁에서 이겼다.

25일 검찰이 “‘얼음’과 ‘푸른 지방(脂肪)’ 등 논란이 됐던 그의 작품이 ‘음란물’이 아니다”며 불기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동성애 등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가 문제가 됐던 ‘푸른 지방’은 구 소련 지도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과 니키타 흐루시초프를 연상시키는 인물의 성적인 행각을 그려 심한 논란을 불렀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검찰은 그동안 작가와 출판사 대표를 소환 조사하고 전문가를 동원해 작품을 감정한 끝에 음란성이 없다고 결론내렸다. 반면 작가를 고발했던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이라는 청년단체는 항의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혀 사태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 단체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내걸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의심을 낳기도 했다.

소로킨이 2월 한 문학지와의 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은 공감이 가지 않는 마치 꼭두각시 같은 인물”이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킨 시점에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이 소로킨을 음란물 유포 혐의로 고소하고 항의 시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빅토르 펠레빈 등 다른 유명 작가의 작품까지 감정해 자의적으로 ‘사회에 유익한 작품’과 ‘불온한 작품’으로 분류하는 등 검열 바람을 몰고 왔다. 언론과 지식인들은 “푸틴 정부가 구 소련식의 검열을 부활시키려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기 시작했고 미국 국무부까지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은 러시아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승리를 거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양측의 공방이 계속되는 동안 소로킨의 작품은 서점에서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팔려 이번 논란이 상업적으로 이용됐다는 비판을 낳기도 했다.

시와 소설 희곡 등 장르를 넘나드는 포스트모던한 작품으로 유명한 소로킨은 90년대 러시아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10여개국에서 작품이 번역됐을 정도로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끊임없이 사회적 통념에 저항해온 그는 ‘우상파괴자’를 자처해왔다.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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