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호제 내년 폐지 또 연기검토…금융개혁 '안갯속'
내년 4월로 예정된 일본의 예금 전액보호제 폐지 방침이 또다시 연기될 전망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30일 오후 야나기사와 하쿠오(柳澤伯夫) 금융담당상에게 “예금 전액보호제 폐지는 예정대로 실시하지만 결제시스템에 혼란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금융청은 기업의 금융결제에 사용되는 당좌예금을 내년 봄 이후에도 계속 전액 보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결제전용 무이자 보통예금을 새로 만들어 전액 보호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일본은 1990년대 거품경제가 무너지면서 금융기관 파산이 잇따르자 갑자기 자금이 금융권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95년 예금 전액보호제 폐지 방침을 2001년 4월까지 보류키로 결정했었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도 경제침체가 계속되자 다시 1년을 연기한 끝에 올 4월 정기예금과 적금, 외화예금 등은 전액보호제를 폐지하고 원금 1000만엔까지만 보호하기로 했으나 보통예금과 당좌예금은 또다시 내년 4월로 연기했다.
정부가 내년 전액보호제 완전폐지를 한번 더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경제사정이 다시 곤두박질치면서. 특히 미국 증시폭락 등으로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속에서 당초 계획을 밀어붙이면 급격한 자금유출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액보호제 폐지는 고이즈미 내각이 추진해온 경제정책의 핵심. 이번 재검토는 사실상 금융구조개혁에서 한발 후퇴한 것을 의미한다. 특히 고이즈미 정책의 대외신뢰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연기가 확정될 경우 해외투자자들의 실망감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기검토에 대해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이지만 경제 분석가들은 “문제의 해결을 늦추는 것일 뿐 국민경제에는 큰 손실을 초래한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햄버거등 다시 가격인하 경쟁…디플레 탈출 '발목'
130엔→65엔→80엔→59엔. 일본 패스트업계 선두주자인 맥도널드의 햄버거 가격 변화다.
맥도널드는 2000년 2월 햄버거 반액할인으로 가격인하 경쟁에 불을 붙였다. ‘디플레 불황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던 맥도널드는 사상최대 매출을 기록한 후 올 2월 경기회복 조짐에 맞춰 다시 80엔으로 올렸다. 가격을 올려도 팔릴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
그러나 매출이 13∼19% 줄어들자 맥도널드는 5일부터 이전 할인가격보다 6엔이 싼 59엔으로 낮추기로 하고 가격정책의 실패를 인정했다. ‘값싼 햄버거’에 익숙해진 소비심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패인. 최근 증시 폭락 등은 소비욕구를 더욱 위축시켰다.
맥도널드가 가격인하로 돌아오자 경쟁사인 롯데리아도 10일부터 햄버거 세트메뉴 가격을 최대 25% 내리기로 했다. 과거 2년여 동안 맥도널드의 가격인하 선제공격에 시달려온 롯데리아로서는 ‘출혈경쟁’이라도 주도권을 빼앗겨선 안 된다는 입장. 한때 주춤했던 가격인하 경쟁은 최근 들어 외식업계를 비롯, 가전업계 택시업계 등에 또다시 확산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5월 경기저점 통과선언을 했을 때만 해도 모두들 ‘디플레 악몽’은 서서히 끝나고 있다고 여겼다. 수년간의 가격인하로 인한 ‘기업 수익악화→설비투자 감소→인력 감축→고용악화→소비심리 위축’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실제로 3∼5월 석달 동안은 소비자 물가지수가 미약하나마 전달보다 오름세로 돌아서는 등 디플레 탈출의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도 잠깐. 6월에 이어 7월 도쿄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1.0%, 전달보다 0.1% 하락했다. 8월에는 더욱 하락폭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 일본은 다시 디플레의 늪에 깊이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