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신문이 입수해 5일 보도한 수기집은 당시 쇼와 천황의 통역을 맡았던 마쓰이 아키라(松井明·1994년 사망)가 1980년경 기록해둔 ‘천황의 통역’이라는 제목의 글. 그는 쇼와 천황과 맥아더 사령관 사이의 회견 총 11회 가운데 8∼11회까지 후반부 통역을, 이후 맥아더 사령관 후임인 리지웨이 장군과 쇼와 천황 사이의 회견 총 7회에 모두 배석했다.
이 수기에 따르면 쇼와 천황은 1951년 4월 맥아더 사령관이 파면된 직후 가진 회견에서 태평양전쟁 전범을 재판했던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을 언급하면서 “전쟁재판에 대해 사령관이 취한 태도에 고마움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에 맥아더 사령관은 “전쟁재판 구상에 대해 처음부터 의문을 품었다. 워싱턴으로부터 ‘천황재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으나 당연히 반대했다”고 밝혔다. 당시 맥아더 사령관이 천황재판을 요구하는 영국이나 소련이 잘못됐다고 주장한 덕분에 쇼와 천황은 불기소 처분돼 전범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고 아사히신문은 덧붙였다.
또 49년 11월 9차 회견에서 천황은 “소련에 의한 공산주의 사상 침투와 조선침략 등이 있으면 일본국민이 동요하는 사태가 벌어질 우려가 있다”며 한국전쟁을 예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에 맥아더 사령관은 “미국은 공백상태에 놓인 일본이 침략당하도록 방관하지는 않겠다. 수년간 과도적 조치로 영미군의 주둔이 필요하다”는 등 미군 주둔구상을 밝혔다.
이밖에 한국전쟁 와중이던 51년 5월에 가진 리지웨이 장군과의 회견에서 천황은 “유엔군의 사기는 어떤가” “제공권은 어떻게 됐느냐”는 등 전황을 물으며 “만일 (공산진영이) 대공세로 돌아설 경우 미군은 원자병기를 사용할 생각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리지웨이 장군은 “원자병기의 사용권한은 미국대통령밖에 없다. 야전사령관인 나로서는 뭐라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하며 지도를 펴놓고 전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수기를 남긴 마쓰이는 1924년 기요우라(淸浦)내각의 외상을 지낸 마쓰이 게이시로(松井慶四郞)의 장남으로 주스웨덴, 유엔, 프랑스 대사 등을 역임했다. 그는 당시 연합국군총사령부가 회견내용의 메모 금지 지시에도 불구하고 몰래 메모를 남겨 89년 불어로 된 저서 ‘주불대사의 추억’을 출판했을 때 간단히 회견내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