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발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예언이 지금도 유효함을 보여준다고 영국의 저명한 정치경제학자 니얼 퍼거슨 교수(옥스퍼드대)가 18일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문에서 주장했다.
퍼거슨 교수는 특히 ‘계급간 갈등’과 ‘자본주의의 역사는 착취와 부 집중의 역사’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계급간 갈등은 “최고경영자(CEO) 계급과 이들이 주도한 회계부정 때문에 타격을 입은 개인주주 계급 사이에 재현되고 있다”는 것. 19세기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급갈등이 자본가 계급 내부의 갈등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그는 또 “CEO 계급은 엔론, 월드컴 등 부실기업 경영자뿐만 아니라 변호사와 사내외 감사, 이사회, 월스트리트 증권 분석가, 신용평가기관, 기관투자자들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하고 “개인주주 계급도 미국인 절반 이상이 주식 투자를 할 정도로 과거 노동자 수만큼이나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부의 집중’ ‘소수의 다수에 대한 착취’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화’ 등 마르크스의 통찰도 실현되고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미국의 경우 1981년까지는 전체 인구 중 소득 상위 1%가 미 전체 자산의 25%를 독점하고 있었지만 90년대 후반 들어 이 비율이 38%까지 늘어나는 등 부익부 현상은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
또 “소수(CEO 계급)는 스톡옵션과 정경유착을 이용해 다수(개인주주 계급)의 부를 착취하고 있으며,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초국적 자본도 국가에서 기업으로 대상이 바뀌었을 뿐 제국주의를 연상시킨다”고 퍼거슨 교수는 분석했다.
그는 90년대 아시아 국가들의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을 미국이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고 비난했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야말로 대표적 정실자본가라고 공격했다. 부시 대통령의 하켄에너지사(社) 주식 내부자거래 의혹을 겨냥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 주식시장의 거품이 빠지고 있고 인플레 위험과 악성 부채가 적다는 점을 들어 “자본주의의 조종(弔鐘)을 준비하기에는 이르다”고 지적하고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자들이 앞장서서 대대적 개혁을 요구하고 나설 때”라고 충고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