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 타임스는 투자 분석가들을 인용, “사우디가 최근 1000억달러에서 2000억달러의 자금을 이미 회수했다”고 보도했다.
엑소더스의 원인(遠因)은 미 경제의 침체로 미국 내 투자의 수익률이 낮아졌기 때문.
그러나 무엇보다 9·11 테러 희생자 유족의 천문학적인 집단소송이 이 ‘분노의 역류’를 촉발시키고 있다.
미국의 희생자 유족 600여명은 15일 사우디의 왕가와 사우디 최대의 내셔널 커머셜 뱅크 등 은행, 국제이슬람구호조직 등 자선단체가 9·11 테러의 배후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을 지원했다면서 1조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소송의 결과에 따라서 사우디의 미국 내 투자자산이 동결되거나 몰수될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 자금을 빼내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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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순히 소송 때문만은 아니다. 사우디는 이번 소송이 지난 달 10일 미 국방부내 최고위 정책자문그룹인 국방정책위원회(DPB)에서 있었던 브리핑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의혹을 품고 있다. 당시 브리핑을 한 랜드연구소의 노랜트 무라빅 연구원은 “사우디가 미국의 ‘적’으로 간주돼야 하며 필요시 사우디의 유전과 미국내 자산도 몰수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 같은 소송이 미국 내 자산 몰수로 가는 전단계가 아니냐는 것.
이번에 피소된 은행 중 하나인 알 라지 투자개발 은행 대변인은 “소송은 미국 내에 저축돼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자금을 쫓아내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현재까지 사우디가 미국 내 투자한 액수는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유입된 자금을 포함해 총 4000억∼6000억달러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미 미국 내 외국인투자가 2000년 3010억달러에서 지난해 1240억달러로 격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우디의 투자자금 회수는 미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 될 전망.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우디 투자자들이 미국 내 계좌의 완전 폐쇄까지는 고려치 않고 있지만 회수자금을 유럽 계좌로 이동시키고 있다”며 “이는 달러화 하락 압력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로서는 민간인들의 소송에 간여할 수 없기 때문에 사우디계 자금 이탈에 속수무책인 상태다.
지난 60년간 전략적 동맹이었던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9·11테러를 일으킨 범인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출신으로 판명남에 따라 냉각되기 시작, 최근에는 사우디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시 협력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천명함으로써 더욱 악화되고 있다. 미국은 사우디 정부가 알 카에다를 비롯해 테러조직을 단속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불만을 품고 있다.김정안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