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거품 관련 그린스펀 발언 |
“지금 증시는 거품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주식 신용거래의 조건을 엄격히 하면 거품을 제거할 수 있다.”(96년 9월 연방공개시장회의) ↓ “증시의 거품을 알기란 매우 어렵다. 알더라도 중앙은행이 이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환상에 가까운 얘기다.”(2002년 8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연례 심포지엄) |
‘이빨 빠진 호랑이’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76).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책임 회피와 변명뿐인가.
파이낸셜타임스 2일자 사설과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의 3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에 따르면 확실히 그렇다. 지난달 의장 취임 15주년을 맞아 역대 두 번째의 최장수 재임기록을 세운 그린스펀 의장은 지난달 30일 와이오밍주 잭슨 홀에서 열린 FRB 연례 심포지엄에서 그의 비판론자들을 향해 쏘아붙였다.
“증시의 거품이 터지기 전까지는 거품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란 매우 어렵다” “비록 거품이 조기에 확인된다 해도 FRB가 경제 활동의 위축을 피하면서 거품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금리를 급격히 인상했을 경우 경제는 침체의 나락에 빠졌을 것이다.”
한마디로 90년대 말 미국 증시의 거품과 2000년 이후 이 거품이 꺼지면서 경제 침체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에 대해 FRB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얘기.
파이낸셜타임스는 “그가 증시의 거품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고사하고 낙관론을 거듭 피력해 거품을 키운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어 “주가 상승이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는지 여부에 대해 정말 중앙은행이 알 수 없다고 믿느냐”고 물었다.
크루그먼 교수는 96년 9월 연방공개시장회의(FOMC)에서의 그린스펀 의장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찾아냈다.
“지금 증시는 거품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주식 신용거래의 조건을 엄격히 하면 거품을 제거할 수 있다.” 명백히 거품의 징후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정책수단까지 있다는 자신감에 찬 발언.
크루그먼 교수는 “그는 이 발언 이후에도 투자자들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 낙관적인 발언으로 일관했다”면서 “사람들은 그를 신경제의 응원단장으로 생각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앞으로도 FRB가 구체적인 행동이 아니라 변명으로 경제 위기에 대응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며 “중앙은행의 사명은 물가를 잡는 것이라면서 경제가 디플레이션(경기수축)으로 가고 있는데도 수수방관한 일본 중앙은행의 전철을 FRB가 밟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린스펀 의장의 FRB는 지난해 무려 11차례나 숨가쁘게 금리를 내려 경기침체를 저지하려 했지만 연방기금 금리만 40년만에 최저수준인 1.75%로 떨어져 경제 회복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 그린스펀 의장은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도, 그렇다고 올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협곡에 갇혀 사방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