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아편전쟁 이후 외국인들의 이주가 러시를 이뤘던 상하이. 당시 이들은 ‘상하이 랜더’라 불렸다. 1세기 만에 다시 상하이 땅을 밟는 ‘제2의 상하이 랜더’가 러시를 이루고 있다. 변화에 잘 적응하는 상하이인들은 기꺼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며 ‘뉴 상하이 랜더’들과 함께 도시 발전을 이루어 나간다.
미국 필즈베리사의 재무담당임원(CFO)을 지낸 뒤 상하이 라이프스타일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한 싱가포르 출신의 x부안춘, 상하이 명문 푸단(復旦)대를 졸업하고 홍콩계 부동산 회사에 들어가 연봉 100만위안(약 1억5000만원)을 꿈꾸며 사는 료먼티에(여), 역시 푸단대를 졸업한 사업가 유웨이, ‘상하이 드림’의 막차를 탔다고 생각하는 광고업체 중역 그레이스 박(여), 프랑스 리옹대에서 중국어, 영어학 석사학위를 받고 바에서 DJ로 활동 중인 기욤 리체 등 5인의 다국적 ‘상하이니즈’를 만나 상하이 생활의 단면을 들어봤다.
●‘상전벽해’의 상하이
x부안춘 사장은 얼마 전 미국산 ‘뷰익’ 자동차를 산 젊은 상하이 직원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황당했던 경험을 얘기했다. 줄곧 오토록(auto lock) 장치가 있는 차만을 운전해 온 직원이 수동으로 문을 잠그라고 하자 못 알아듣고 머뭇거리더라는 것. 그 직원은 수동잠금장치만 있는 차는 상상도 못했다. x 사장은 결국 차 안의 자동제어장치를 가리키며 “도어 버튼을 눌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생활 2년차인 료먼티에는 하루 빨리 돈을 벌어 ‘상하이의 대치동’격인 신톈디(新天地) 플라자 구역의 ‘레이크빌라’라는 가장 비싼 집을 사는 것이 목표다. 이곳의 평당가격은 약 1100만원. “홍콩 미국의 부동산 기업들이 집값을 굉장히 올려놓고 있어요. 지금은 외국인이 대부분인 곳이지만 상하이인들도 서둘러 그 쪽에 합류하려고 하죠.”
그레이스 박 본부장은 “도시 내의 물가와 빈부차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5위안(약 750원)짜리 점심을 먹는 사람, 1000위안(약 15만원)짜리 저녁식사를 하는 사람이 확연히 구분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주 3회 오는 파출부에게 시가보다 조금 많은 월 500위안(약 7만5000원)을 주고 있다.
유웨이는 35세지만 아직 ‘싱글’이다. 정부정책상 결혼해도 한 자녀 밖에 낳을 수 없기 때문인지 “혼인과 가계 잇기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 한다. “돈을 많이 벌어 지금보다 행복해 지는 것”이 향후 인생목표다. 호텔 종업원용 유니폼을 납품하는 회사를 경영했던 그는 지난 몇 년 사이 외국계호텔들이 상하이에 속속 들어온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다. 미즈노제 반투명 티셔츠, 카시오제 시계, 옴므제 셔츠, 듀엔제 청바지, 폴리스제 투명 선글라스, 나이키 스니커즈를 몸에 걸치고 가방에는 헤어젤과 스포츠웨어, 샴푸를 넣고 다닌다. 다음 사업을 위해 쉬고 있는 그는 포트만거리의 쇼핑몰 ‘플라자 66’ 지하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몸을 가꾸는 게 주된 일과다.
●다국적 다인종 다언어…
그레이스 박 본부장은 “푸단대의 경우 이번 가을학기에만 300여명의 한국인들이 어학연수나 유학을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상하이 도심에 있는 미국인 학교에도 30%는 한국인이란 말도 있고요. 아무래도 영어 중국어를 다 가르치니까…”라고 말했다.
료먼티에는 어릴 적부터 ‘영어공부’에 공을 들였다. 푸단대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기 위해 500 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뚫었다는 그녀는 “시험을 위해서라도 영어공부를 안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요즘도 BBC를 즐겨 시청하며 듣기 능력을 키우고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 같은 영자신문에 ‘영어와 중국어를 맞바꿔 배우자’고 광고하는 외국인들을 개인교사로 고용해 말하기 능력을 키운다.
프랑스인 기욤씨는 “홍콩에서도 현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만다린어나 광둥어 대신 억양이 세고 빠른 ‘상하이어’를 가르친다는 얘기를 들었다. 피트니스센터나 바에서 상하이인들과 격의없이 얘기하면서 ‘상하이어’를 쉽게 배운다. 특히나 요즘은 ‘인터내셔널 DJ’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어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기욤씨는 또 상하이의 수준 높은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심지어 사라예보나 모스크바에서 온 사업가나 학생들과도 만날 기회가 많아 국제적인 인맥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겉은 홍콩, 속은 아직 베이징
‘중국적인 관행’은 상하이의 화려한 외양과는 별개의 문제인 듯 보인다. x 사장은 “아직도 사업변경신청을 하려면 130개 이상의 도장을 받아야 한다. 중국인 파트너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또 “자동차를 몰려고 해도 등록비 도로보수비 번호판비 등 14개 항목에 세금을 내고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레이스 박 본부장은 “우리가 만든 광고가 심의에서 걸리면 회사관계자들의 공통된 첫 마디는 ‘상하이 정부관료 누구한테 부탁하면 금방 처리될까’예요. 외국인들도 ‘아시아의 허브’에 왔으니 ‘차이니스 스탠더드’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죠”라고 말했다.
상하이 출신 상하이니즈의 반응은 조금 다르다. “사업을 하려면 담당관료들을 당연히 접대해야죠. 그 사람을 친구로 삼고 싶다는 호의의 표시인데 돈을 안 쓰면 되겠어요?” (‘펍’ 사업을 준비 중인 유웨이)
상하이〓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