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라크 지원〓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최신호(23일자)에서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장관이 민간인 시절이던 83년 12월 20일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특사로 이라크를 방문해 후세인과 양국관계 개선 방안을 논의했던 사실을 예로 들며 미국이 오랫동안 이라크를 지원해 왔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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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는 비밀이 해제된 국무부 전문(電文)을 인용해 럼즈펠드가 당시 후세인에게 “(레이건) 대통령의 안부를 전하고 바그다드 체류의 즐거움을 표현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후 이라크에 이란군의 배치상황에 관한 위성사진과 헬리콥터 등 군사장비를 제공하고 이라크원자력에너지위원회(IAEC)에 생물무기로 배양할 수 있는 박테리아와 각종 균류를 보내기 시작했다.
미국이 당시 이라크를 지원한 것은 이를 통해 이란을 견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이란의 이슬람 혁명세력이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미국 외교관들을 444일간 억류(1979∼81년)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던 미국은 당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이 승리할 경우 중동의 안정이 위협받을 것을 우려했었다.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는 이란에 승리했으나 미국은 그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개발을 걱정하게 됐다. 뉴스위크는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궁지에 몰린 후세인이 미군에 화학무기를 사용하거나 생물무기를 테러리스트에게 넘기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미 관리들이 이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와 이라크의 우호관계〓뉴욕타임스는 15일 일요판 특집인 ‘위크 인 리뷰(Week in Review)’ 섹션 커버에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총리 시절이던 75년 후세인과 함께 프랑스의 핵 발전소를 시찰하는 사진을 크게 게재했다.
타임스는 시라크가 당시 이라크의 떠오르는 젊은 지도자였던 후세인을 주말에 파리의 집으로 초청하고 그를 ‘개인적인 친구’라고 부르는 등 ‘경의’와 ‘우의’를 표명했었다고 전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그러나 지난주 타임스와의 회견에선 “후세인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며 “그는 많이 변했고 나 역시 그렇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미국이 이란의 팔레비 왕정을 지지하던 70년대부터 이라크의 후세인을 지지하며 그를 역동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지도자로 평가해 왔다.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81년 폭격한 원자로도 프랑스가 제공한 것이었다.
프랑스는 또 8년간에 걸친 이란-이라크전에서 이라크에 대량의 무기를 공급했으며 이라크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서방국가들 가운데 이라크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미국이 이라크를 도와 준 주요 사례 | ||
시기 | 사안 | 미국의 조치와 반응 |
80∼88년 | 이란-이라크전 | 이라크에 생물무기 원료 등 각종 군사지원 |
87년 | 이라크, 걸프만에서 미 구축함스타크호에 엑조세 미사일 발사선원 37명 사망 | 미사일 발사를 실수로 용서대신 이란이 전쟁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비난 |
88년 | 이란-이라크전 종전 후 | 밥 돌 상원의원 등 의회 대표단 이라크 방문미 농산물 등 판촉 |
91년 | 걸프전 |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를 밀어낸 뒤더 이상 진격하지 않고 후세인 내버려 둠 |
91년 이후 | 미 국방부, 후세인의 걸프전범죄에 관한 보고서 작성 | 국방부 고위 관료, 보고서를 비밀로 분류해공개 막음 |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