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노선에 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NATO는 이 ‘유서 깊은’ 곳에서 면모 일신을 추구했다. 바르샤바는 냉전시절 NATO의 최대 경쟁자인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모태가 된 곳.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다시 한번 NATO 내의 분열상과 미국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냈다.
▽미-독 관계 파열음〓먼저 미국과 독일의 불편한 관계가 노출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25일 폐막기자회견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의 ‘이라크전 반대’와 슈뢰더 내각 전 각료의 ‘히틀러 발언’으로 손상된 미-독 관계 개선의 책임은 전적으로 독일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속담을 인용해 “구덩이에 빠졌을 때는 더 깊게 파지 말라”고 경고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24일 만찬 중에도 페터 슈트루크 독일 국방장관이 연설하기 직전 자리를 떴다. 그러나 그는 “고의로 피한 것은 아니다”면서 오히려 슈트루크 장관이 이라크의 테러단체 연계 혐의 등에 대한 미 중앙정보국(CIA)의 브리핑에 불참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라크 공격’ 다른 목소리〓회원국들은 이라크 공격에 대한 찬반 여부를 둘러싸고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미국의 최대 맹방인 영국을 비롯해 친미 성향의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등은 강력한 지지를 표시했다. 그러나 독일은 여전히 ‘무조건 반대’, 프랑스는 ‘유엔을 통한 해결’을 외쳤으며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도 공격 유보를 주장했다.
NATO 회원국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캐나다 벨기에 덴마크 그리스 아이슬란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터키 폴란드 체코 헝가리 NATO 약사 1949 미국 캐나다와 서유럽 10개국 NATO 12개국 체제 발족 1952 그리스 터키 가입 1955 서독 가입, 소련과 동유럽 7개국 바르샤바조약 기구 발족 1967 브뤼셀 본부 개소 1982 스페인 가입 1989 베를린 장벽 붕괴, 동유럽 혁명 1991 바르샤바조약기구 소멸, 소연방 해체 1995 보스니아 분쟁 군사 개입 1999 폴란드 체코 헝가리 가입, 유고연방 공습 2002 NATO-러시아 회의 설치 합의, 19+1체제 출범 |
럼즈펠드 장관은 당초 전망과는 달리 이라크전에 대한 회원국의 군사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 대신 유럽 내외에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는 2만1000명 규모의 신속대응군을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프랑스측은 “신속대응군의 유럽 밖 투입은 안 된다”며 미국이 신속대응군을 이라크전에 투입할 가능성에 제동을 걸었다.
이처럼 회원국이 사사건건 충돌하자 보다못한 조지 로버트슨 사무총장은 “적들이 지켜보고 있다. 우리의 분열은 적들만 이롭게 할 뿐”이라고 ‘옐로카드’를 던졌다.
▽막후에선 미국에 구애(求愛)〓일각에서는 미국이 군사지원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NATO 군사력을 우습게 평가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아프간전쟁 때도 NATO 군사력은 사실상 무시됐다. 오죽하면 AFP통신이 9·11 테러 1주년의 ‘승자와 패자’를 꼽으면서 NATO를 ‘잊혀진 자’로 뽑았을까.
그럼에도 각국 장관들은 ‘은밀하게’ 럼즈펠드 장관에게 다가가 다양한 형태의 대미 지원을 약속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회의를 끝내며 ‘개별 회원국으로부터 지원을 약속 받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 대답은 예스”라면서 “이번 회의에 대한 만족도는 10점 만점으로 할 때 9점은 된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