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의 ‘변신’은 한마디로 WMD 개발 및 수출포기와 핵사찰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대북정책 검토를 마친 뒤 북-미대화 재개를 제안하며 이 문제를 의제로 삼겠다고 일찌감치 공언했었다. 백악관은 25일 이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북한 핵 의혹 규명 의지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장관이 16일 브리핑에서 “북한은 핵무기들을 갖고 있다”고 단언한 것에 비춰보면 미국은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에 경수로 핵심부품을 인도하기 전에 실시하도록 되어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조기에 수용하도록 평양에 압력을 가할 것이 확실시된다.
미국은 또 북한에 미사일의 수출과 개발 포기 및 이에 대한 검증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 말 북한과 미사일 협상을 거의 타결지었으나 부시 행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은 당시 미국이 위성발사를 대신해 주면 사거리 300마일이 넘는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고 수출도 중단하겠다고 제안하면서 매년 10억달러에 이르는 식량 석탄 생필품 지원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휴전선에 집중된 북한 재래식 무기의 후방 철수와 감축도 함께 제기할 예정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미사일 협상에만 역점을 뒀으나 부시 행정부는 핵과 재래식무기 문제를 추가했다.
북한으로서도 미국의 확고한 체제안전 보장없이는 WMD를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통일연구원 전성훈(全星勳) 연구위원은 “경제개혁에 이어 군사문제마저 미국측에 양보한다면 군부의 반발이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따라서 원칙적으로 WMD 문제 해결 입장을 밝히고 구체적 사안은 추후 협의하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북한이 보여온 태도변화를 감안한다면, 대북특사의 평양방문 때 극적인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심스러운 관측이다. 북한 지도부도 이젠 부시 대통령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북한의 최근 변화들은 대미관계 개선을 위한 사전포석의 성격도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2002년 북-미관계 일지 | |
1월30일 | 부시 대통령 연두교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언급 |
2월22일 | 북 외무성 대변인 담화, 대화 거부 입장 표명 |
4월3∼6일 | 임동원 특보 방북. 김정일 위원장, 프리처드 대사 방북 수용 |
6월25일 | 미, 대북특사 7월10일 파견계획 북측에 통보 |
6월29일 | 서해교전 |
7월2일 | 미, 고위급 특사 방북 계획 철회 |
7월26일 | 북 외무성 대변인, 미 특사 방북 적극수용 입장 표명 |
7월31일 | 파월 미 국무장관-백남순 북 외무상 회동 |
9월16일 |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북 핵무기 보유’ 발언 |
9월17일 | 북-일 정상회담 |
9월20일 | 미 백악관 국가안보전략 발표. 북한을 ‘불량배 국가’로 규정 |
9월25일 | 부시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에게 특사 파견 표명 |
[한-미 전문가 시각]
▼백학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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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살상무기(WMD)는 북한 체제안보의 확고한 수단으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이 WMD 문제에 대해 미국과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물론 WMD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약속받고, 경제보상도 받는다는 조건 하에서다.
각론에서 볼 때 핵문제는 사실상 제네바합의라는 틀에서 이미 해결이 되어 있는 상태다. 문제는 과거 핵활동 규명을 위한 사찰 여부인데, 북한은 경수로사업의 안정적인 추진을 보장받는 조건에서 미측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미사일 문제는 이미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발사 유예선언을 했다. 남은 문제는 미사일 연구 생산 배치 수출 등 단계별로 접근할 사안이다.
이 또한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상당부분 협의가 진전된 상태라는 점에서 북한은 미국과 실질적인 협의를 진행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현재 추진 중인 경제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WMD 문제에 협조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북한체제의 안정이 확고히 보장되는 방향에서 성의를 보일 것이기 때문에 협상 자체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협상이 장기화되더라도 북한의 WMD 문제는 이미 해결쪽으로 접어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로버트 듀자릭 미국 허드슨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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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북특사파견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대량살상무기 문제 등에 관해 과연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그러나 이로 인해 양국 관계의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이 우려하는 북한의 핵 미사일 등의 이슈는 전략적 차원에서 협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 보상과 같은 북-일간의 현안에 비해 타결이 어렵다.
정치적인 면에서 미국은 북한의 성실성을 여전히 의심하고 있다. 북한 역시 대량살상무기 카드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사일 수출의 경우 만일 수출 중단에 따른 대가를 지불한다면 비교적 쉽게 타결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이슈들은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경제적 면에서 보면 미국은 북한에 투자할 생각이 없고, 북한은 미국에 수출할 만한 물건이 없기 때문에 경협이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이다. 북한은 국제기구로부터 차관을 얻기 위해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되기를 원하고 있지만 최근 납북일본인문제와 적군파 테러범의 일본송환에 대해 성의를 보인 것 정도로는 미국이 이를 허용치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미국의 대북특사파견은 초보적인 수준의 대화재개에 머물 공산이 크다. 후속 대화는 북한의 대응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