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치지도’ 左-右 사라진다

  • 입력 2002년 10월 1일 19시 15분


유럽 정치에서 좌·우의 시대사조가 사라지고 있다. 최근 유럽 대륙을 휩쓴 우파 바람에도 불구하고 좌파 정권이 잇따라 재집권하면서 ‘우파가 시대조류’라는 한때의 분석이 설득력을 잃게 된 것.

지난달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재집권에 성공한 데 이어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총선에서 승리했고,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도 연말 선거에서 집권 기회를 노리고 있다. 유럽 각 정당에서 좌·우 차별성이 급속히 희석돼 가는 새로운 정치지형도를 이코노미스트 최신호(28일자)는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유럽의 정당 풍토에서는 아직도 우파가 기업주에, 좌파가 노조에 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차이가 적다.

독일선거에서 소득세 최고세율로 좌·우파 후보는 각각 42, 40%를 제시했으며 국내총생산(GDP)에서 국가 재정지출 비율을 두고도 40, 42%로 엇비슷했다.

우파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연금제도를 개혁하고 노동시장을 자유화하는 데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프랑스 중도우파 정부는 사회당 정권 시절 도입한 주 35시간 근로제를 완화하려 하지만 노조의 눈치를 보며 복지정책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이념이 사라진 자리에는 대중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정당의 정책 차별성이 희미해지면서 유권자들이 정치인 개인으로 눈을 돌림에 따라 대중 정치인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선거에서 개인적 인기가 높은 슈뢰더 총리와 예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가 승리한 대신 우둔하고 완고한 이미지의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전 총리가 패배한 것은 이를 반증한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우파와 차별성이 없어 ‘토리(Tory) 블레어’로도 불리지만 국민이 원하는 것을 알아채는 정치적 감각에 기대 여전히 높은 지지도를 누리고 있다.

최근 각국에 우파 정당이 부상한 것도 대중주의에 영합한 결과다. 자신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복지혜택을 이민자들이 거저 누리고 있다는 유권자들의 적대감을 정치 이슈로 포장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

슈뢰더 총리의 선거운동도 대중주의의 변형이다. 그는 독일의 뿌리깊은 반전 여론에 기대 미국의 이라크전을 강하게 비난, 지지율을 반전시키며 재선에 성공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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