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초가 돼 퇴근한 아내를 위해 저녁을 짓고 주말계획을 짜는 것도 그의 몫. 빌씨는 자신을 아내의 ‘가사 행정 전담 보좌관’이라고 말한다.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로 가정 내 위상이 바뀌면서 성공한 아내를 위해 가사와 육아를 대신 책임지는 이 같은 ‘트로피 남편(Trophy husband)’이 새로운 유형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트로피 남편’이란 13년 전 경제전문지 포천지가 커버스토리로 중점 보도해 화제를 모았던 ‘트로피 와이프’(성공한 중장년 남성들이 수 차례의 결혼 끝에 마치 트로피를 획득하듯 얻은 젊고 아름다운 전업주부 아내란 뜻)의 대칭 개념.
포천지에 따르면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조차 불투명했던 ‘트로피 남편’들이 최근 급속히 늘어 이 잡지가 올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미 여성사업가 50인 중 3분의 1이 ‘트로피 남편’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포천지 주관 세미나에 참석한 각계의 정상급 여성 187명 중 30%도 남편들이 가사와 육아를 돌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지나친 일반화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미 경제학자 실비아 휴렛(55)은 최근 저서 ‘생명 만들기:전문직 여성과 육아’에서 대다수의 성공한 커리어우먼들은 일반적으로 남성들의 기피 대상이며 이로 인해 가정을 꾸리는 꿈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상당수라고 주장했다.
여성의 사회진출을 돕는 단체인 카탈리스트사의 세일라 웰링턴 회장도 “남편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할 경우 겪는 사회적 멸시 때문에 부부가 갈등을 겪는 경우도 많아 보편화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