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테러는 이라크戰 지원국 경고”

  • 입력 2002년 10월 14일 19시 16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하자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13일 현장을 방문하고 부상자들을 위로했다. 폭발이 일어난 사리 클럽 주변의 시신들과 부상자 처리작업은 일단락됐지만 사건의 충격은 인도네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이번 테러는 미국이 대(對)이라크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시점에서 터져 그 배후와 의도, 미국 등 서방사회의 앞으로의 대응 등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테러의 3대 초점을 정리해본다.》

①테러 의도와 전략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에 알 카에다가 개입했을까. 아직 증거는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인도네시아나 이번 테러로 가장 많은 자국민이 희생된 호주는 알 카에다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다. 호주의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도 13일 알 카에다, 혹은 알 카에다와 연관된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단체인 제마 이슬라미아(JI)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이번 폭탄 테러는 미국 주도의 대(對)테러전과는 관계없는 휴양지의 서방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자행됐다는 점이 이전과 다르다. 지금까지의 대서방 테러는 해외주둔 미군기지, 대사관, 미국 군함 등 상징성 있는 목표를 향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알 카에다가 테러의 전략과 성격을 바꾼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을 낳고 있다.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을 준비중인 미국의 연합군 구축 전선을 교란하기 위한 테러가 아니냐는 것.

AFP통신은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국 주도의 연합군으로 참전했던 호주가 알 카에다 등의 보복 테러를 우려해 12일 재외공관에 보안 강화령을 내린 가운데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호주는 최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강경노선도 적극 지지해 왔다. 폭탄 테러가 발생한 사리 클럽과 인근의 쿠타 해변은 호주 젊은이들이 몰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번 테러는 또 알 카에다의 고위 책임자이며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가 8일 미국뿐 아니라 동맹국들에 대해서도 추가 테러를 가할 것이라고 위협한 후 발생했다. 이 때문에 알 카에다가 미 동맹국들의 시설물이나 민간인들까지 겨냥해 테러를 자행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대테러전을 무력화하려 한다는 관측도 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②동남아 테러조직

발리 폭탄테러의 배후로 인도네시아와 주변국의 이슬람 과격단체들이 의심을 받고 있다.

9·11테러 이후 알 카에다는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이면서 상대적으로 치안이 허술한 인도네시아의 토착 세력과 손을 잡은 것으로 추정돼 왔다.

가장 유력한 배후 단체는 이슬람 성직자 아부 바카르 바시르가 이끄는 제마 이슬라미아(JI). 최소한 200여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동남아시아에 이슬람 공동체 국가 건설을 목표로 발족됐다. 인도네시아 무자히딘 협의회(MMI)의 우두머리이기도 한 바시르는 14일 기자회견을 자처해 연루설을 강력히 부인했다.

필리핀의 이슬람 분리주의 단체인 모로 이슬람 민족해방전선(MILF)도 용의 단체로 거론되자 “테러뿐 아니라 JI와도 관련이 없다”고 즉각 발표했다. 아프가니스탄 군인 출신인 자파르 우마르 탈리브가 이끄는 라스카르 지하드도 용의 선상에 올랐다. 2000년 4월 기독교에 대한 지하드(성전)를 선포한 이래 지금까지 최소 6000여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부상한 이슬람방어전선(FPI)은 이슬람 율법 수호를 명분으로 내걸고 주말에 인도네시아의 술집 디스코텍 등 유흥업소를 무장 습격해 악명을 날렸다. 필리핀을 근거지로 1000여명의 회원이 중동 지역까지 영향력을 넓힌 아부 사야프 그룹(ASG)은 가장 과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말레이시아에서 1995년 조직된 쿰풀란 무하히딘 말레이(KMM)는 최근 인도네시아로 그 활동 범위를 확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관례’와는 달리 이들 조직 중 자신의 소행임을 주장하는 조직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③인도네시아 정부 위기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정부가 발리 폭탄테러로 출범 이후 최대의 시련을 겪게 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그동안 절대 다수인 무슬림(이슬람교도)을 자극할까봐 이슬람 조직을 사실상 방치해 왔지만 이번 테러로 이들 조직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하게 됐다. 사망자 대부분이 외국인이어서 최대 우방국인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對)테러전 동참 요구를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

그러나 이 같은 전면전은 이슬람 조직의 재무장을 유도해 인도네시아의 정치 불안을 한층 가중시킬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4일 “이번 테러는 인도네시아의 정치시스템과 현 정부를 밑바닥부터 흔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보 불안이 확산되면 메가와티 정부와 반대 입장에 서온 군부가 상대적으로 힘을 얻게 돼 정부의 입지가 더욱 약해질 수 있다.

▼관련기사▼

- 발리 폭탄테러 이모저모

정치뿐 아니라 경제난 악화도 정부의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테러로 관광객의 발길이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되면서 관광산업에 의존해 온 인도네시아 경제는 외환위기에서 채 회복되기도 전에 또다시 치명타를 입게 됐다. 발리는 지난해 135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인 인도네시아의 주요 ‘외환 제조기’다. 세르얀토 산토사 인도네시아 문화관광위원회 위원장은 “관광산업에 대한 영향이 매우 크고 상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치분석가인 듀이 포르투나 안와르는 “발리에 대한 공격은 인도네시아의 급소를 찌른 격”이라고 분석했다.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도 13일 “테러는 관광에 의존하고 있는 지역 경제를 파괴해 연약해진 인도네시아 경제 전반을 광범위하게 손상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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