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돔 쿠르투리(문화회관) 극장의 인질 사태가 3일째를 맞으면서 700여명으로 추산되는 인질들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25일 새벽에 풀려난 인질들과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의사들은 한결같이 인질들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으며 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 때문에 상당수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25일 새벽 풀려난 인질들은 “반군들이 총기를 난사하는 등 위협하고 있다”면서 “인질범들이 인질들을 객석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것도 막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인질범들은 가끔씩 함께 체조를 하면서 긴장을 풀고 체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인질들에게는 객석의 의자 밑으로 들어가게 하거나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게 함으로써 공포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식사도 극소량만을 나눠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민영 NTV가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25일 새벽 반군의 허가를 얻어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NTV는 “반군의 모습을 방영하면 방송사를 폐쇄하겠다”는 러시아 정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반군 지휘관 모프사르 바라예프 등 인질범들과 회견하고 극장 안의 상황을 전했다. NTV 취재팀은 극장 주방에서 인질범과 6명의 여성 인질을 만났다. 바라예프를 제외한 인질범들은 복면을 하고 있었으며 바라예프가 자매라고 소개한 2명의 여성 인질범의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눈만 드러낸 검은색 차도르를 입고 권총을 들고 있었으며 몸에는 폭탄을 둘렀다.
바라예프는 “누구도 우리의 거사를 강요하지 않았으며 우리는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스메르니크’”라고 밝혔다. 반군들은 2개월 동안 인질극을 준비하면서 폭탄과 무기를 모스크바로 반입했지만 사전에 문화회관을 답사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반군들은 자신들의 인터넷 사이트인 카프카스센터(kavkaz.org)를 통해 “극장 안에 2t의 고성능폭약(TNT)이 설치돼 있다”고 위협했다.
인질범들은 극장 식당에 남아 있는 음식과 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진과 함께 극장 안으로 들어가 인질들을 살펴본 레오니드 로샬 정신과 전문의는 인질들 중 상당수가 충격과 공포로 정신적 공황 상태라고 진단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세르게이 미로노프 상원의장 등 러시아 지도자들은 긴급 대책회의를 가진 뒤 “체첸 철수라는 정치적 요구는 들어줄 수 없지만 반군이 인질을 풀어주면 제3국으로 무사히 빠져나가도록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4일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인질 사태 해결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스라엘도 특수부대 파견 등을 러시아에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장 인질 사태로 러시아 문화계가 공연 계속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러시아는 모스크바에만 1000여개의 크고 작은 극장이 있는 ‘공연 천국’이지만 인질극의 여파로 24일 저녁부터 주요 공연의 예매가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인기 뮤지컬 ‘시카고’의 제작진은 24일 “인질들의 고난에 공감을 표시하기 위해 인질극이 끝날 때까지 공연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42번가’ ‘메트로’ 등 다른 인기 뮤지컬의 공연은 계속됐다. ‘42번가’의 제작진은 “일상적인 삶을 계속하는 것도 테러에 대한 항의의 표시”라고 말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