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上海)시 서기를 거쳐 베이징(北京)으로 영전해 간 두 사람을 일컬어 상하이 주민들간에 널리 회자된 말이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장쩌민 시대에 쩡칭훙의 위상을 상징하는 말도 찾기 어렵다. 》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 후보 가운데 가장 주목할 인물로 쩡칭훙을 꼽는 사람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16차 전국대표대회 이후 만약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진다면 후진타오(胡錦濤)와 쩡칭훙 간의 결전이 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평민 출신의 후진타오와는 달리 쩡칭훙은 당 간부의 자제인 ‘태자당(太子黨)’의 핵심 멤버. 쩡칭훙의 정치적 성장은 부친 쩡산(曾山)과 부친의 부하였던 위추리(余秋里·전 국무원 부총리)와 천궈둥(陳國棟·전 상하이 시서기), 그리고 장쩌민의 후광에 힘입은 바 크다.
쩡산은 1927년 12월 예젠잉(葉劍英)과 녜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