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백위열/"따뜻한 情이 한국인의 희망"

  • 입력 2002년 11월 15일 18시 41분


1973년 선교사로 한국에 왔으니 올해로 30년째다. 친구들을 만나면 “절반은 한국인이 되었다”고 농담하곤 한다. 처음 왔을 때 한국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전통적인 농업국가였다. 꼬불꼬불한 비포장도로로 차를 타고 시골에 가면 우리가 타고 간 차와 도시락 가방에 먼지가 하얗게 쌓이곤 했다. 하지만 넉넉하고 정갈스러운 정을 가진 시골사람들의 반김이 있었기에 너무도 즐겁고 소중한 추억이었다.

서양적 인간관계의 토대가 사랑이라면 한국적 인간관계의 토대는 정(情)이다. 물론 한국인들도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한국인의 인간관계는 사랑보다는 정이 기본이라는 생각이다. 자주 가는 해장국집 아줌마의 “한 그릇 더하쇼” 하는 권유, 시장통에서 만나는 상인들의 따뜻한 미소,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아파트 이웃들, 총장실을 서슴없이 드나드는 학생들…. 이들을 통해 나는 한국인과 한국에 대해 깊은 정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학생과 교직원, 옛 제자들이 나를 위해 회갑잔치를 마련해 주었다. 한국에서도 이제 많이 하지 않는 회갑잔치를 외국인인 나한테까지 해준 한국사람들의 정에 우리 부부는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진한 감동을 맛보았다.

한국인의 정은 사람뿐 아니라 고향에 대해서도 남다른 것 같다. ‘정든 고향’, ‘정든 산천’이란 단어도 있지 않은가. 이러한 한국인들의 고향사랑은 같은 고향사람들을 하나의 연줄망으로 연결하게 할 정도로 강한 유대감을 보인다.

혹자는 이런 고향사랑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한국인의 고향사랑은 정치적으로 이용될 만큼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의 정은 미운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폭넓은 관용이다. 흔히 한국인들은 ‘미운 정’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미운 정이란 상대를 미워하는 감정이 아니라 미워하는 가운데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 길들여지며 상대를 귀히 여기며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역설적 표현이다.

오히려 한국사람들은 정이 넘치다보니 ‘온정주의’에 치우쳐 거부를 못하는 약점으로까지 발전되는 경우가 많다. 정이 너무 많다 보니 맺고 끊기를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인 필자가 보기에는 21세기는 정이 많은 사람이 적응할 수 있고 융통성이 많은 사람에게 유리한 시대가 될 것 같다. 지식정보화 사회는 ‘인간의 얼굴을 한’ 하이테크와 하이터치가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잘 들어맞는 세상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인정이 넘치는 한국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요소를 첨단기술에 접목시켜 세계를 제패할 마지막 민족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내가 한국에서 배운 정, 그것은 따뜻하고 융통성 있는 퍼지(fuzzy)적인 사랑이기에 21세기에 더 빛나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장점이 될 것이다.

▽백위열은 누구?▽

본명 윌리엄 헤럴드 패취. 194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나 로체스터대에서 특수상담학박사를, 동부나사렛대에서 신학박사를 받았다. 1973년 나사렛성결회의 선교사로 한국에 와 나사렛대 심리학 교수 등을 거쳐 1997년부터 충남 천안 나사렛대 총장으로 재직해오고 있다.

백위열 나사렛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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