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소송]가난할수록 뚱뚱하다?

  • 입력 2002년 11월 24일 19시 03분


“먹느냐 먹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패스트푸드사의 비만유발 책임을 둘러싼 소송으로 미국 사회의 비만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무엇이 현대인의 뱃살을 늘리는가. 파이낸셜타임스 주말판(23∼24일자)은 과잉 욕구를 부추기는 식품업계의 마케팅과 기술 발전에 따른 육체노동 감소를 비만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했다.

뉴욕대 식품영양학과 매리언 네슬레 교수에 따르면 과잉생산을 해결하려는 식품업계의 마케팅이 필요 이상의 욕구를 만들어 냈다. 성인 1인당 연간 육류 및 생선 소비량은 20년 전의 120파운드에서 191파운드로, 당류 소비는 122파운드에서 150파운드로 늘었다.

업계에서는 “비만은 개인의 선택의 자유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각종 매체에서 음식 광고가 넘쳐나고 음료수 및 과자 자판기가 학교에까지 들어와 있는 현실에서 개인의 선택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고 신문은 반문했다. 군살 없는 몸매로 건강미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테니스 스타 윌리엄스 자매가 맥도널드 광고에 나설 정도로 현대인들은 ‘먹으라고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

식품업계의 마케팅은 욕구가 늘어난 비만인을 창조했고, 그 결과 음식산업은 물론 관련 산업까지 번창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비만인구를 위한 전문잡지가 속속 생겨나는가 하면, 중요한 것은 몸매가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며 비만을 미화하는 영화까지 나왔다.

비만은 기술발전의 필연적 대가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정의한다. 기술개발이 농업혁명을 이끌었고, 그 결과 음식가격이 떨어져 소비가 늘었다는 것. 한편으로는 기술 개발에 따른 일상 생활의 자동화가 인간을 덜 움직이게 한 결과 비만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있다.

미 국립보건연구원(NIH)에 따르면 미국인의 15%만이 권장량의 운동을 하고, 25%는 노동 시간 외에는 전혀 몸을 쓰지 않는다. 1864년 35세 미국인 성인남자의 평균 체질량지수(BMI)는 23(25 이상이면 과체중 또는 비만)이었지만 1944년 23.75, 1991년 26으로 계속 늘었다.

비만이 당뇨, 심혈관질환, 암, 고혈압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데 따른 경제적 손실도 크다. NIH 집계에 따르면 비만에 따른 의료비와 기회비용 등 경제적 손실은 연 1000억달러, 체중감소 상품 및 서비스 구매 비용은 330억달러에 달한다.

코넬대 영양과학과의 제프리 소벌은 비만이 저소득층에 집중되기 쉽다는 역설적 ‘비만의 빈부격차’도 지적한다. 생산의 필수 수단이었던 육체노동이 이제는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사치품이 됐지만 저소득층은 운동을 할 돈과 시간이 없다는 것.

그러나 식욕은 인간의 근본 욕구이고, 비만을 유발한다고 해서 생활의 편의를 모두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만을 원천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비만을 유발하는 생활습관을 고치는 것만이 실천 가능한 대안이라는 전문가들의 조언과 함께.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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