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라 발생한 인도양에서의 북한 선박 나포, 북한의 핵시설 재가동 선언 등을 계기로 고개를 들고 있는 이중잣대론은 미국 내 온건파와 강경파 양측 모두에서 나오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12일 “‘선제 및 저지’를 골간으로 하는 부시 행정부의 대량 살상무기 확산 저지 전략이 북한 미사일 선적 화물선 나포 사건을 계기로 현실에 맞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군축전문가인 조지프 시린시오네는 이 신문과의 회견에서 “미국의 대(對)테러전쟁에 협력한 예멘이 스커드미사일을 보유하는 건 문제삼지 않지만, 이라크는 안 된다는 식의 이중잣대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부시행정부가 정책의 초점을 ‘대량살상무기의 제거’에서 ‘특정 정권의 제거’로 이동시켰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전직 미 국무부 군축 전문가인 로버트 J 아인혼은 “만약 다음에 이란으로 가는 북한 미사일 선박을 억류할 경우 예멘과의 차이를 미국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북한 선박의 나포 및 억류 해제에 대해 “미국이 서툴게 일을 처리했다”고 논평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미 행정부 관리들은 “다양하고 서로 다른 위협을 다루는 데 있어 공식은 없다”며 “이번에는 선박에 실린 미사일이 국가 대 국가간 교역품이었다는 것이 증명된 이상 계속 억류할 권리가 없었지만, 테러그룹이나 유엔의 공식 제재를 받는 국가에 가는 것이라면 대응이 달랐을 것이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해상에서 선박을 억류하려면 법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며 “최소한 배의 법적 소유자와 접촉해 선박 수색에 대한 허가를 받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미국 내 강경파들에게서도 이 같은 ‘이중잣대론’이 제기되고 있다고 AFP통신이 14일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강경색채를 가진 미 행정부 일부 관리들은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이라크의 위협이 다른 양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해결 방식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것은 그가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축출하기 위한 하나의 구실로밖에 이용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물론 초강경파들 사이에서조차 북한과의 전쟁은 ‘거의 생각할 수 없는(almost unthinkable) 일’이라는 인식이 존재하고 있다고 이 통신은 덧붙였다.
즉 이라크와 전쟁을 벌일 경우 미국이 단기간에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지만, 100만명의 상비군을 갖고 있고 단시간 내에 서울을 초토화시킬 능력을 갖고 있는 북한은 전혀 사정이 다르기 때문.
이 같은 ‘이중잣대론’에 대한 비판은 부시 행정부의 대량살상무기 저지 정책이 봉착한 딜레마를 반영하고 있다.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