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어떤 아이디어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을까.
뉴욕 타임스 매거진은 미국 전역에서 전문가 관료 유명인사 일반시민 등에게 설문조사를 해 ‘2002 올해의 아이디어 97선’을 선정, 15일 인터넷에 공개했다.
▽전쟁과 테러〓방독면 비상식량 방탄조끼 세트인 ‘개인용 대테러장비’는 올해의 히트 상품. 한 보안회사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40층 이상에서 근무하는 중역들을 타깃으로 미니 낙하산을 만드는 등 ‘마천루 탈출 장비’도 다양하게 선보였다.
위험을 빨리 알리기 위한 ‘휴대전화 보안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으며, ‘천연두 예방 접종’은 생물학 테러에 대한 우려와 함께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의 적을 이롭게 한 전투원에게도 미국 피고인의 권리를 모두 보장해야 하느냐는 논란거리인 ‘이적 전투원’ 개념과 테러국가의 위협에서 미국을 보호하는 전략은 방어가 아니라 ‘선제공격’이라는 논리도 올해의 아이디어.
▽기업 비리〓유수 기업의 회계 부정과 도산은 9·11에 버금가는 충격을 안겨줬다.
버나드 에버스 전 월드컴 회장이 조사를 받을 때 침묵으로 일관하자 이를 비꼰 ‘모르쇠 CEO’라는 말이 유행했다.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기업 스캔들이 단지 악덕 기업의 불법 행위만이 아니라 회계 시스템에도 원인이 있다며 스톡옵션을 비용 처리하고 기업연금수익은 인정하지 않는 등 ‘핵심 수익’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과학기술〓올해 4월 미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주름퇴치 주사제 ‘보톡스’. 인기만큼이나 부작용 논란도 만만치 않다.
스페인의 한 공학자가 아기 100여명의 울음을 분석해 ‘아기 울음 번역기’인 ‘왜울어’를 내놨다. 아직 스페인어 버전만 개발돼있다.
이스라엘 헤브루대학 연구진이 유전자 공학으로 만든 ‘깃털없는 닭’과 뉴욕대 연구진이 쥐의 머릿속에 전자장치를 이식해 만든 ‘원격 조종 쥐’는 생명공학의 개가라는 찬사와 함께 인간의 이기가 낳은 재앙이라는 비판도 불러일으켰다.
▽고정관념〓미 중서부 지역 135가구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부모가 자식들 중 한 명을 편애해도 다른 아이들의 성장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와 올해의 아이디어에 포함됐다.
또 한 심리학 연구소의 연구 결과 ‘여성이 남성보다 질투가 심하다는 통념도 사실 무근’임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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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비지니스위크, 24개 선정▼
돈의 용도에 맞춰 동전구멍을 여러 개 낸 돼지저금통, 위아래를 뒤집은 케첩병, 흔들어 전원(電源)을 만드는 플래시, 1회용 도마…. 이런 제품을 만드는 데 첨단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생산단가가 크게 오르지도 않는다. ‘콜럼버스가 달걀을 깨 세웠듯’ 사고의 틀을 바꾸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들까.
미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가 최근호에서 소개한 ‘올해의 최고 상품 24선’은 이 같은 기발한 착상이 여전히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 소비자들이 물건을 쓰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불편함’은 달리 생각하면 고정관념을 깨지 못한 대가다.
피기뱅크(돼지저금통)는 미국 사회에서도 인기 있는 선물목록. 비영리단체 ‘MS 제너레이션’이 개발한, 구멍을 4개 낸 돼지저금통은 불룩한 배 부분을 각각 ‘저축’ ‘용돈’ ‘이웃돕기’ ‘투자’ 등 4개 부분으로 나눠 어린이들에게 은연중 돈 쓰는 법을 가르친다. 이 저금통은 미 ‘부모선택재단’이 정한 ‘올해의 교육용 장난감’으로 당당히 꼽혔다.
아마 골퍼들에게 퍼팅라인과 퍼터헤드 페이스를 수직으로 맞추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캘러웨이사의 신제품은 퍼터 페이스 반대편에 2개의 골프공 무늬를 일렬로 새겨 퍼팅 정렬에 큰 도움을 줬다. 냉장고 선반에 놓인 케첩병을 뒤집어 놓는 가정이 많다. 흔들지 않고 곧바로 짜내기 위해서다. 하인츠사는 이에 착안, 아예 병꼭지로 세우는 새로운 케첩병을 팔기 시작했다.
디스커버 파이낸셜 서비스사는 열쇠고리에 묶은 신용카드를 내놓았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자동차를 타고 쇼핑을 떠나는 데 착안한 상품. 오디오박스사는 자동차를 원격시동할 수 있는 열쇠고리에 자동차 내부온도를 알려주는 소형 LCD판을 붙였다. 차 내부가 추울 때만 시동을 걸어 예열하면 된다.
더치보이사는 페인트를 캔에 담지 않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는 간단한 아이디어로 인기를 끌었다. 손에 페인트가 묻을까 걱정하며 드라이버로 조심스럽게 캔 뚜껑을 따는 수고가 필요없게 됐다. ‘포에버 플래시 라이트’를 앞뒤로 30초 정도 흔들면 무려 5분을 밝힐 수 있는 전원이 생겨난다. 건전지는 무용지물이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의 마법이 없어도 지하동굴을 탐험할 수 있게 됐다. 유럽 12개국이 공동으로 개발한 유로화도 최고 상품에 꼽혔다. 여행객들의 환전 필요를 없앤 덕택이다. 비즈니스위크는 이 같은 최고 상품을 소개하면서 “왜 이런 아이디어를 전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까”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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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