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中-러 ‘盧당선자와의 외교’ 전망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8시 08분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과의 관계가 급변할 것 같지는 않다. 노 당선자가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외교·대북(對北) 정책의 틀을 그대로 계승한다는 입장이기 때문. 그러나 노 당선자가 20일 당선 기자회견을 통해 ‘대북관계에서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듯이 다소 진보적인 그의 색채가 향후 4강과의 관계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국…북핵등 대북정책 조율 필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20일 기자회견에서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대미(對美) 정책이 김대중 정부의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도 노 당선자와 어떤 이견도 없다면서 남북대화 추진을 계속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의 한미관계는 남북관계의 진전과 북-미관계의 악화라는 부조화 속에서 틈이 벌어지고 있는 게 사실. 여기에다 여중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요구하는 한국 내 여론이 높아져 한미관계 자체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시점이다. 또 미국이 노 당선자의 집권초기에 이라크를 진압한 뒤 본격적으로 대북(對北) 압박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경우 현재의 ‘햇볕정책’의 틀로는 변화하는 북-미관계를 담아낼 수 없다. ‘햇볕정책’을 지지하도록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설득하든지, 아니면 오히려 북한에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시킬 만큼 ‘햇볕정책’을 강화하든지 둘 중의 하나다.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대사는 “노 당선자는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하지 않도록 설득해야 하며 또 한편으로 북한을 설득해 한반도 비핵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번도 워싱턴을 방문한 적이 없을 정도로 미국에 대해 문외한인 점도 노 당선자에게는 적잖은 부담이다. 하지만 미국도 남북대화로 북핵 포기를 이끌어내길 기대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노 당선자의 역할 수행에 따라서는 남북, 북-미관계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한미관계가 더욱 가까워질 수도 있다. 이는 노 당선자가 자신의 지지기반인 젊은층의 대미(對美) 정서를 추스르면서 미국의 동조를 이끌어내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일본…北日관계 개선 전환점 기대▼

일본의 정치권과 한반도 관계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김대중 정부 들어 긴밀해진 양국 우호관계를 지속, 강화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9월 북-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과의 본격적인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수교회담이 조속히 재개되기를 바라고 있다. 또 한반도의 현상 유지는 일본의 오랜 대(對) 한반도 정책이다.

이 때문에 일본은 대북 강경론자로 인식되어온 이회창(李會昌) 후보보다는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노 후보가 당선된 것을 ‘잘 된 일’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북(對北) 정책과 관련해서는 노 당선자가 “한반도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점을 들어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즉 노 당선자가 남북대화에 비중을 두게 되면 한미일 공조의 틀이 깨지고 이 경우 피랍생존자의 잔류가족 문제 등 일본 내 현안 해결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 나아가 햇볕정책 강화를 통해 남북관계가 더욱 긴밀해지면 일본의 중재자 역할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노 당선자가 일본에 아무런 인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도 일본으로서는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특히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20, 30대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에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와 역사교과서 왜곡 등에 대해 현 정권보다 단호한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이 노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 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방한을 추진키로 한 것도 이 같은 점들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중국…'두개의 한국' 정책 지속 추진▼

중국 정부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주장해온 노 당선자의 정책이 자국의 대(對) 한반도 정책에 부합한다고 판단에서다.

중국은 △경제 발전을 위한 평화로운 주변 환경의 조성 △전략적 완충지대로서의 북한 체제의 붕괴 방지 △‘두 개의 한국 정책’에 기초한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확대 등 3대 원칙을 한반도 정책의 기조로 삼아왔다.

이에 따라 중국은 앞으로 노무현 정권에 대해 보다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새로 출범한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체제가 이념적 유대에 기초한 북-중 관계 보다 국가이익에 기초한 현실주의적 대북 정책을 펴나갈 경우 한중 관계는 더욱 긴밀한 협력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러시아…한반도 정책 큰 틀 변함없을 것▼

20일 노무현 후보의 당선 소식이 알려지자 러시아 외교관리들은 “노 당선자가 햇볕정책 등 김대중 정부의 대북 및 외교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양국관계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반도 안정 유지를 동북아 안보의 기본틀로 삼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남북한 관계가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 시베리아 철도연결 사업 등 경제현안 추진을 위해서도 그렇다. 러시아는 특히 한국의 새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최근 거세지는 반미감정 등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기존 질서에 변화의 조짐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러시아는 이를 한반도 주변 강국의 틈새 속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한국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는 방침이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