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을 놓고 한국과 이견을 빚어온 미국은 이번 대선 결과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본보는 19일 워싱턴 한국경제연구소(KEI) 회의실에서 한반도 전문가인 윌리엄 드레넌 미 평화연구소(USIP) 연구학술 담당 부실장과 로버트 듀자릭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대담으로 이 같은 의문을 풀어보았다. 사회는 본보 해외 칼럼니스트인 피터 벡 KEI실장이 맡았다.
-많은 놀라움을 준 한국 대선에 대한 관전평을 한다면….
▽드레넌〓대단한 선거로 역동하는 민주주의를 느낄 수 있었다. 후보들이 치열한 선거전을 평화적으로 치른 것이 인상적이다. 선거 막판에 국민통합21의 정몽준(鄭夢準) 대표가 노 당선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과 이것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에 도움이 되지 않은 것 등은 놀랍다. 투표율이 비교적 낮은 것은 다소 이상했다.
▽듀자릭〓투표율이 낮은 것은 한국 사회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갈라져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차이가 그리 크다고 생각하지 않고, 누가 당선돼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취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후보들간의 상호비방과 중상 등 네거티브 캠페인이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나오는 것을 막았을 수도 있다.
-노 당선자의 승리는 한국 대선에서 ‘반미’가 ‘북풍’보다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나. 선거직전에 터진 미사일 적재 북한 선박의 나포와 북한의 핵시설 재가동 선언 등이 예상과는 달리 큰 변수가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듀자릭〓이제 많은 한국인들은 더 이상 북한을 위협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이는 큰 변화이다. 반면 대북 강경책을 추진하는 부시 대통령의 인상은 좋지 않다. 미국의 동맹국 선거에서 반미가 이슈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월 독일총선에서도 미국, 특히 부시 대통령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재집권에 크게 작용했다.
▽드레넌〓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본 것은 한국정치의 미래다. 나는 후보들이 외세와 무관한 애국자임을 주장하는 현상은 한반도 통일 후에나 나타날 줄 알았다. 그러나 이 후보조차 다급해지니까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문제 등과 관련, 미국에 등을 돌리려 했다. 이런 점에서 기존의 한미관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한국의 반미는 양국의 오랜 안보 동맹에 작별을 고하는 것으로 역사는 이번 선거를 한미관계의 전환점으로 기록할 것이다.
-한국이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추구하려는 것에 관해선….
▽드레넌〓미국은 공식적으론 한미 관계가 대등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과 대등한 국가는 없다. 한국인들의 대미관은 이중적이다. 한국인들은 미국을 싫어하면서도 자녀들을 유학보내고, 국난시 이민갈 국가로 미국을 가장 먼저 생각하지 않는가.
-한미 관계 개선을 위해 양국이 취해야 할 조치는….
▽듀자릭〓한국측에선 문제는 북한 핵 등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저해하는 것도 북한의 행동이다. 미국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한국에서는 미국에서처럼 문제가 안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하고, 한국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이해해야 한다.
-월가의 한 분석가는 한국 대선 며칠 전 블룸버그 통신에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 눈길을 끌었는데….
▽듀자릭〓월가는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이른바 박정희식 모델과 이의 원조 격인 일본식 모델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박정희 모델은 ‘수출은 선, 수입은 악’이라고 규정하고 외국인들의 한국증시 투자 등을 제약해 왔다. 이 후보는 친재벌적이어서 이 같은 박정희 모델에 가까운 것으로 인식돼 왔다. 월가는 따라서 외국인 투자환경 등의 면에선 노 당선자가 이 후보보다 낫다고 판단했을 것 같다.
-여중생 치사사건으로 한국에서 현안이 되고 있는 SOFA 개정에 관한 의견은….
▽드레넌〓한국에선 노 당선자의 승리로 SOFA 개정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는 듯하나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미국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주한미군으로부터 박탈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의 어느 정권도 한국과의 SOFA를 개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키르기스스탄과 체결한 SOFA도 한미간의 SOFA와 유사하지 않은가.
-부시 행정부는 김대중 정부가 물러나기를 기다려 왔다. 노 당선자에겐 어떻게 대응할까.
▽드레넌〓부시 행정부가 이번에 이 후보 당선을 바랐던 것은 알려진 비밀이다. 한편 김대중 정부는 2000년 미 대선 때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부시 후보에게 승리,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계승되기를 기대했었다. 부시 행정부는 공식적으론 한국 대선 결과를 환영하지만 실제론 현 상황에 대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최소한 단기간은 부시 행정부도 패자의 하나다. 미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하나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 등 중요 현안에 관해 근본적인 견해차가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겠다.
▽듀자릭〓노 당선자와 부시 대통령은 앞으로 열릴 정상회담에 앞서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지난해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직후 서둘러 3월에 워싱턴을 방문했던 김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실패였다. 노 당선자는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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