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 나라의 장난감 상가를 걷다 보면 ‘TOYS’가 아니라 ‘TOYZ’라는 표현을 흔히 볼 수 있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과자, 껌 등의 겉봉도 마찬가지다.
‘Kickerz gummy candy’ ‘Cookie Barz’ 등등 영어의 복수형이나 소유격 표현 자리를 S 대신 Z가 차지한 경우가 비일비재다. 빌보드 차트에서도 ‘M!ssundaztood’ 등 Z가 S를 대신한 곡명이 자주 눈에 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30일자 ‘Z가 시대정신(Zeitgeist)으로 상승(Zip)’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영어 알파벳에서 가장 사용 빈도가 적었던 소외된 글자 Z가 문법상 적자(嫡子)인 S를 밀어내고 있는 현상을 진단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Z에 대한 열정(Zeal)의 주역은 인터넷 세대. 10여년 전부터 일부 컴퓨터 해커들과 게이머들이 음성학적 변형의 쾌감을 즐기며 S를 Z로 대체했던 게 어린 네티즌들로 확산됐다는 것. 더 거슬러 Z 열풍은 힙합 문화에 연결된다. “우리는 공부할 시간이 없어 알파벳을 정확히 사용하는 걸 사치로 여긴다”는 일종의 도전적인 자조(自嘲)에서 빈민 지역 흑인들이 일부러 Z를 S 대신 사용했다. 특히 1991년 흑인 젊은이의 삶을 다룬 영화 ‘Boyz N The Hood’가 개봉된 극장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Boyz’란 단어가 전국에서 유명해졌다.
청소년 대상 업계도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어린이 대상 케이블 채널인 키즈 네트워크사는 “1994년 채널 이름을 지을 때 보통 어린이(kids)가 아닌, 첨단을 걷는 어린이(kidz)라는 이미지를 풍기려고 Z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Z 열풍에 앞서 1920년대 초에는 ‘C’ 대신 ‘K’를 쓰는 게 유행이었다. 예를 들어 ‘kraze(craze), kats(cats)’ 등.
그러나 K를 비롯해 대부분의 언어적 유행의 수명이 짧았던 데 비해 Z 열풍은 갈수록 확산 추세다. 전문가들은 “‘정통’을 변형시킨 유행을 거부해 왔던 도시 엘리트들의 하부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