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戰 임박…전쟁 기다리는 '비운의 쿠르드族'

  • 입력 2003년 1월 17일 18시 07분


요즘 이라크 북부의 눈 덮인 산악지대는 작열하는 박격포 소리 속에 포연이 자욱하다.

물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지역을 장악 중인 쿠르드 반군들과 새로운 거점을 마련하려는 알 카에다 계열 무장조직간의 전투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남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 쿠르드 반군과 이라크 정규군이 대치하고 있는 긴 전선은 일시적인 소강상태 속에서 본격적인 지상전 돌입의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에겐 높고 험한 이 산들이 유일한 친구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친구(미군)를 기다리고 있다.”

쿠르드 반군 일선 지휘관인 할라트 카림은 지난주 산악지대 진지를 찾은 뉴욕 타임스 기자에게 “사담 후세인을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는 과연 이들의 염원이 이뤄질까.

전운(戰雲)이 짙어지면서 세계 곳곳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시위가 확산되고 있지만, 이들 쿠르드족은 정반대다. 후세인 대통령 정권에 의해 수천∼수만명이 학살된 참혹한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은 이번 이라크 사태를 독립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면 쿠르드족은 미군을 도와 지상전에서 최전선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500여명의 특수요원을 투입해 쿠르드 반군의 군사훈련을 돕고 있다. 이라크 내 쿠르드 반군은 현재 7만5000여명. 이들은 오랜 무장투쟁 경험과 스스로를 ‘페쉬 메르가’(죽음 앞에 버티고 선 전사들)라고 부르는 용맹성으로 단련돼 있다.

쿠르드족은 선사시대부터 ‘쿠르디스탄’이라 불리는 이란-소련 접경 일대, 티그리스강 지류 8만여㎢에 살아왔으나 한번도 독립을 이뤄보지 못한 비운의 민족. 매부리코와 흰 피부에 고유 언어를 사용하며 대부분 수니파 이슬람교도들이다. 현재 터키 내에 1000여만명, 이라크에 350여만명을 포함해 2500여만명이 흩어져 살고 있다.

지난 수백년간 열강들은 분쟁 때마다 ‘독립’이라는 달콤한 약속을 던지며 쿠르드족을 이용해 왔다. 비근한 예로 1970년대 초 이란의 팔레비 왕가는 이라크와의 국경 분쟁 때 쿠르드 반군을 선동해 대이라크 투쟁을 벌이게 했으나 이라크와 평화협정을 맺자 지원을 끊었고 쿠르드인들은 이라크의 보복공격으로 수천명이 숨졌다. 1988년에는 후세인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한 탄압을 가해 5000여명이 숨지기도 했다. 1991년 걸프전쟁 때도 무장투쟁을 벌였지만 미군이 후세인 정권을 그대로 두고 철수하는 바람에 수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때문에 전쟁을 앞두고 쿠르드인들이 품고 있는 독립에 대한 기대 한편에는 ‘이번마저 열강의 방패막이로 동원됐다가 버림받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뒤섞여 있는 상태다.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